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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와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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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도톨 2019. 11. 6.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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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교 본문]

열왕기상 1장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When King David was old and well advanced in years, he could not keep warm even when they put covers over him.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So his servants said to him, "Let us look for a young virgin to attend the king and take care of him. She can lie beside him so that our lord the king may keep warm."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Then they searched throughout Israel for a beautiful girl and found Abishag, a Shunammite, and brought her to the king.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The girl was very beautiful; she took care of the king and waited on him, but the king had no intimate relations with her.
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Now Adonijah, whose mother was Haggith, put himself forward and said, "I will be king." So he got chariots and horses ready, with fifty men to run ahead of him.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His father had never interfered with him by asking, "Why do you behave as you do?" He was also very handsome and was born next after Absalom.)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Adonijah conferred with Joab son of Zeruiah and with Abiathar the priest, and they gave him their support.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But Zadok the priest, Benaiah son of Jehoiada, Nathan the prophet, Shimei and Rei and Davids special guard did not join Adonijah.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Adonijah then sacrificed sheep, cattle and fattened calves at the Stone of Zoheleth near En Rogel. He invited all his brothers, the kings sons, and all the men of Judah who were royal officials,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but he did not invite Nathan the prophet or Benaiah or the special guard or his brother Solomon.

[수요 새벽 설교 최우윤 목사]

<음모와 섭리>

우리가 시작하는 열왕기는 흔히 이스라엘의 왕들의 역사라고 하고 역사서라는 분류로 구분합니다.
열왕기를 말 그대로 풀면 왕들의 역사를 나열한 기록이라는 말이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이 왕의 역사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습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체도 왕들이 아니라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열왕기는 선지자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왕들에게 있지 않다는 것은 오늘 열왕기상이 시작되는 첫 구절을 통해서도 알게 됩니다.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이 구절은 참으로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따뜻하지 않다는 표현은 단순한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다윗 왕의 수명이 다해간다는 표현이고, 나아가 이것은 다윗 왕국의 몰락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전 역사를 통틀어 다윗만큼 뛰어난 인물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칭한 자이자, 하나님 앞에 서는 예배자로 다윗을 기억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헤아려보면, ‘이제 더 이상 다윗과 같은 왕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더 나아가 ‘다윗이 없으니 이제 이스라엘도 운이 다하겠구나’ 하는 속단이 앞설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삶의 어떤 문제와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봉착하게 될 때에는 마음 한 구석에는 낙심과 포기의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우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낄 그 때에 하나님은 일하시기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이끌어오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새롭게 시작하실 일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떤 일인지 실마리가 오늘 말씀 5절에 시작됩니다.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태어난 순서대로 왕이 되는 관례로 볼 때에는 다음 순서가 아도니야가 맞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이 6절 말씀으로만 보면 아도니야가 다윗의 뒤를 잇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앞서 읽으신 5절에서 왜 아도니야는 자신을 스스로 높여야 했고, 또 자기를 위해서 군대를 일으켜 준비했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윗도 알고, 아도니야도 알고, 하나님도 아시는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힌트를 8절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 뒤에 이어지는 9절과 10절 말씀도 이 말씀을 강조합니다.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아도니야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것에는 결함이 없었습니다.
결정적인 한 가지, 아도니야가 왕이 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세우신 사람은 아도니야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다윗의 대를 예언해주시는데, ‘네 몸에서 날 네 씨’, 즉 이 때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입니다.
당시 아도니야는 이미 세상에 나와 있었으므로 이 말씀에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한 이 유명한 나단의 신탁은 한 번이 아닙니다.
사무엘하 12장 24~2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나단은 두 번에 걸쳐서 다윗의 뒤를 이을 이가 솔로몬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뜻을 펼치실 때, 때로 그 일을 모른척하고 외면하고 불순종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아니라 솔로몬이 다음의 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불 속에서조차 온기가 없는 그 노쇠한 아버지를 두고 군대를 일으킬 만큼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오차가 없이 임합니다. 우리 삶에 무언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변화의 시점, 전환점이 이를 때에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와 싸우는 사탄의 음모와, 우리 밖에서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부딪치게 됩니다.
이 싸움은 이미 결론을 아는 싸움입니다. 전도서 7장 13절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오늘 우리에게 펼쳐질 수많은 일들 가운데 형통치 않고, 모든 길이 막혀지는 것 같으며, 낙심이 되는 순간에 오늘 말씀을 떠올리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은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 일하시는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오차가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의 마음속에서 고개를 드는 사탄의 음모를 막으시고 하나님의 섭리로 강하게 하사 오늘 하루도 다윗과 같이 승리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솔로몬과 같이 새로운 시대로, 새로운 하루로, 열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함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앞에 소망과 간구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