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설교 본문]
열왕기상 15장
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In the eighteenth year of the reign of Jeroboam son of Nebat, Abijah became king of Judah,
2.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and he reigned in Jerusalem three years. His mothers name was Maacah daughter of Abishalom.
3.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He committed all the sins his father had done before him; his heart was not fully devoted to the LORD his God, as the heart of David his forefather had been.
4.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Nevertheless, for Davids sake the LORD his God gave him a lamp in Jerusalem by raising up a son to succeed him and by making Jerusalem strong.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For David had done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and had not failed to keep any of the LORDs commands all the days of his life -- except in the case of Uriah the Hittite.
[월요 새벽 설교 정성엽 전도사]
<아비얌>
이름만으로도 그 위대함을 떠올릴 수 있는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역사가 저물고, 분열된 남유다왕국에서는 기독교인들에게조차 익숙하지 않는 왕들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오늘 살펴볼 남유다의 2대 왕 아비얌, 또는 아비야라는 왕은, 성경을 좀 읽어보셨다는 분들의 기억 속에도 가물가물한 이름의 왕입니다.
재위기간은 단 3년에 지나지 않았으며, 본문에 요약된 그의 인생은 여덟 절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4절과 5절은 고조할아버지인 다윗에 관한 내용입니다. 남유다왕국의 역사 속에서 아비야의 비중은 미미하다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우리가 새벽시간에 살펴볼 분열왕국 시대의 남유다의 역사를 개괄적으로나마 숙지하고 계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아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표는 남유다 왕들에 대한 성경저자의 평가들을 바탕으로 개략적인 평점을 매겨서, 남유다왕국의 역사를 재구성해 본 연대기표입니다. 이름이 적힌 위치가 위쪽에 있는 왕일수록 평가가 좋은 왕이며 아래쪽에 적힌 왕들은 평가가 나쁜 왕들입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초대왕 르호보암부터 마지막 왕 시드기야까지 순서이고, 오늘의 주인공 아비얌은 노랑색으로 표시된 두 번째입니다.
표의 폭은 왕들의 재위기간에 비례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여로보암으로부터 끊이지 않고 악한 왕들을 배출하면서 약 200년간 존속했던 것에 비해, 남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부터 시드기아까지 1명의 여왕을 포함하여 총 20명의 왕들이 재위하면서, 기원전 587년에 바벨론제국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약 35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화면에 나타난 표의 굴곡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남유다에도 북이스라엘의 왕들 못지않는 악한 왕들이 나타나 왕국 전체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기도 하였지만, 이때마다 다윗에 비견되는 성군이 나타나 폐허가 된 남유다를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이 기원전 721년경에 앗시리아제국에게 멸망당할 당시에도, 남유다에는 히스기야라는 걸출한 왕이 등장하여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당대 세계 최강국이었던 앗시리아 제국의 예루살렘 포위공성공격을 막아내는 기적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6대왕 요시야의 치세를 끝으로 연이은 악한왕들의 등장과 함께 남유다의 역사도 쇄락하기 시작합니다.
열왕기서의 저자는 왕마다 평가를 해 놓는데요, 평가의 전제는 ‘여호와 보시기에’입니다.
마치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에 등장하는 ‘여호와 보시기에 좋았더라’처럼 열왕기서 저자는 인간적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왕을 평가합니다.
먼저 열왕기서의 저자는 남유다의 3대 성군들을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남유다 최초의 성군이라 할 수 있는 아사는 열왕기상 15장 11절에서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고 평가받습니다. 앗시리아의 공격을 막아낸 히스기야는 열왕기하 18장 3절에서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고 평가받았으며, 마지막으로 요시야는 열왕기하 22장 2절에서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분들의 비교대상은 다윗이었으며 평가의 기준은 그 행위입니다.
성군 급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았던 다섯 명의 왕들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4대왕 여호사밧은 열왕기상 22장 43절에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9대왕 아마샤는 14장 3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아사랴 또는 웃시야로 불리는 분열왕국 10대왕은 열왕기하 15장 3절에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11대왕 요담은 열왕기하 16장 34절에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다섯 분 중 네 분의 비교대상은 다윗까지는 아니더라도 선한 왕이었던 자신들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가 악한 왕이었던 8대왕 요아스는 아버지 같았던 제사장 여호야다와의 관계 속에서 평가를 받습니다.
열왕기하 12장 2절에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분들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한 행위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제 악한 왕들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다의 5대왕 여호람에 관해서 열왕기상 8장 18절과 19절에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6대왕 아하시야에 대해서는 8장 27절에 ‘아하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열왕기하 16장 2절과 3절에는 12대왕 아하스에 관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14, 15대 왕인 므낫세와 아몬에게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라고 평가하였고 남유다의 최후의 빛 요시야 왕 이후 남유다 멸망의 뒤안길에 있었던 4명의 악한 왕들에게는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라는 평가가 내려집니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악한 행위로 판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오늘의 주인공 아비얌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5장 3절, 함께 읽겠습니다.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아비얌에 관한 평가는 미리 살펴본 다른 남유다왕들의 평가기준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19명의 왕들은 여호와 앞에서 행한 행위들로 평가를 받은 반면, 아비얌은 행위에 대한 평가와 함께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였다’라는 새로운 기준이 추가된 유일한 왕입니다. 열왕기서에는 형편없이 미미한 분량만 언급된 아비얌이지만, 병행되는 역사기록인 역대하 13장을 보시면 좀 더 상세한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역대하 13장에서는 아비야가 북이스라엘의 건국왕 여로보암과 대규모 전투를 벌인 기사가 나옵니다.
자신이 거느린 남유다 군대의 2배에 달하는 여로보암의 80만 대군을 눈앞에 둔 아비얌은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의 군사들을 향하여 일갈을 내뱉습니다. 요지는 하나님께서 변치않는 언약을 맺으신 사람은 바로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인 다윗과 그의 후손이며, 여로보암이라는 근본없는 잡배가 만들어 놓은 금송아지나 섬기는 너희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정통적인 제사를 드리는 우리에게 덤비는 것은, 하나님께 덤비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비얌이 멋들어지게 일장 연설을 펼치고 있는 사이, 백전노장 여로보암은 아비얌의 군대 뒤로 복병을 전개하여 포위공격 진형을 갖춥니다. 전력이나 전략에서 모두 여로보암의 압도적인 우위였으며, 아비얌 군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였고, 남유다의 군사들과 제사장의 무리들은 대경실색하여 여호와께 크게 부르짖게 됩니다.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직접 나서주십니다. 120만명, 고대의 계수법에 관하여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성경말씀을 그대로 따르면, 양쪽 진영 합쳐서 120만명의 군인들 목전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여로보암군을 치시고 이중 50만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고대사회에서 50만명이 사망하는 전투는 극히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적벽대전이나 살수대첩 정도 되어야 이 비슷한 인명피해가 나는 규모입니다. 역대하 13장의 전쟁기사만 놓고 보면 아비얌은 적벽대전의 제갈공명이나 살수대첩의 을지문덕장군 정도 되는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을 무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고보니 이렇게 소홀하게 다뤄질 인물이 아닌 것처럼 보여지는데, 오늘 본문에서 아비얌은 너무 미미하게 다뤄지고 야박하게 평점을 받은 것 같아보입니다.
성경상의 자료가 너무 간략하다보니 아비얌에 관한 야박한 평가의 원인을 정확하게 확언할 수는 없으나 한 가지 추측은 가능한 것 같습니다. 아비얌은 전투 직전에 북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그들이 여로보암이 만들어 준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죄를 통렬하게 지적했는데 그 금송아지 숭배장소가 바로 벧엘이었습니다. 역대하 13장 19절에 의하면 야비얌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 큰 승리로 인하여 북이스라엘 영토였던 벧엘까지 탈환하게 되는데 그는 벧엘에 있는 금송아지 신상이 놓여있는 산당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아비얌은 이 큰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향한 어떤 제스쳐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한 절박한 간구에는 능하였지만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그 어떤 감사의 흔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에 관한 마지막 기록은 이 전투 이후 ‘점점 강성하며 아내 열넷을 거느려 자식 38명을 낳았다’는 기록이 전부입니다.
또 한 가지 참고할 점은 역대하 15장16절 기록에 의하면 14명의 부인 중 왕세자의 어머니였던 왕후는 아들 아사왕에게 폐위를 당할 정도로 극렬한 아세라 숭배자였습니다. 아비야는 자기의 반려이자 남유다왕국의 국모가 아세라 숭배를 하도록 허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부르짖으며, 현실 속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아비얌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온전치 못했다는 오늘 본문을 영어로는 his heart was not fully devoted to the Lord his God. 마음이, full, 가~~득히 하나님께 헌신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눠지거나, 일부분만 드려지는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숙적 여로보암의 명성을 넘어서는 일, 북이스라엘을 다시 통합하는 일, 자손을 많이 낳아 가문을 강하게 하는 일과 같은 관심들로 마음이 갈라진 아비얌은 하나님께 마음 전체를 바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남유다의 나머지 19명의 왕들에 관한 평가에서 기준은 다윗, 또는 자신들의 부친과 같이 ‘행하였다’가 기준이었지만, 아비얌의 경우에는 여기에 더하여 ‘마음’, 특히 다윗의 마음을 비교대상으로 둡니다. 비록 역사상 손꼽을 정도의 위대한 승전을 거둔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결실이 대단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눠진 마음을 드리는 사람은 아비얌처럼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평가는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가의 기준은 보여지는 행위나 업적에 앞서는 더 깊은 의미의, 마음, 곧 행동과 업적을 일으키는 마음의 동기, 다시 말해 마음의 중심입니다. 아비얌처럼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생이라한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온전함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평가 받을 수 없다고 오늘 본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누어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기도로 나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관심으로만 가득 차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어놓고 확인해 보시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80만 대군을 물리치는 업적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자라는 평가를 받기를 소원하시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어제부터 새롭게 시작한 예배에 성령님 임재가 나타나시길, 그리고 두레교회 성도님들 한분한분이 말씀으로 삶의 현장을 능력 있게 살아내는 체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