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설교 본문]
열왕기상 19장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So Elijah went from there and found Elisha son of Shaphat. He was plowing with twelve yoke of oxen, and he himself was driving the twelfth pair. Elijah went up to him and threw his cloak around him.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Elisha then left his oxen and ran after Elijah. "Let me kiss my father and mother good-by," he said, "and then I will come with you." "Go back," Elijah replied. "What have I done to you?"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So Elisha left him and went back. He took his yoke of oxen and slaughtered them. He burned the plowing equipment to cook the meat and gave it to the people, and they ate. Then he set out to follow Elijah and became his attendant.
[화요 새벽 설교 최우윤 목사]
<엘리사, 소명이 이끄는 삶>
우리는 어떤 순간에든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를 향한 목적이 아닌, 소명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기를 원합니다.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악인이나 의인 모두 인생의 환난과 고난의 시간을 피해갈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은 환난과 고난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지금 아합과 이세벨이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던 850명의 선지자들을 잃고도 엘리야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보면, 여전히 기세등등하고 형통해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지쳐 넘어질 때에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협박하지만은 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쓰러져 낙망할 때에 그 때에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고 고백할 때에, 우리의 심령은 가난해지고, 우리가 의지하던 나 자신마저 찾을 수 없는 벼랑 끝에 서 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 뒤에서 우리를 일으키시고 우리 삶의 전면에 나서서 일하시기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15~1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여기에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들은 후에 아합의 왕국을 멸망하게 만드는 주역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다 사용하셔서 아합을 화살에 맞아 죽게 하시고, 이세벨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하시며, 그 뿐 아니라 아합의 왕족들 모두 다 멸절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협박하는 사탄의 속삭임과, 아합과 이세벨이라는 대적으로부터 무너져 내린 엘리야에게 아주 중요한 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엘리사는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즉 춤추는 목장의 주인인 사밧의 아들이고, 그는 열두 겨릿소를 가지고 자신의 땅을 경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야가 밭을 갈던 엘리사에게 다가가 겉옷을 던지자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를 따릅니다.(한겨리는 한쌍이므로 24마리)
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는 즉각적으로 엘리야를 따르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즉각적인 응답과 동시에 온전한 헌신을 보여줍니다.
2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이것은 엘리사가 즉각적으로 엘리야를 따르되, 다시는 돌아오지 않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해 순종하고도 목숨이 위태로워 삶을 포기하려 할 때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광야의 길을 지나 엘리사를 만나러 간 것은 그가 세상이 아니라, 소명이 이끄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해주신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방인이요, 지금 현재 상태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시퍼렇게 자신을 죽이려 추적하는 아합과 이세벨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서 우상을 숭배하는 거짓 선지자들, 예언자들을 두루 거친 그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000명이 어디엔가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선택과 결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광야를 지나 다메섹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상식적으로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안정된 삶과 보장된 미래를 순식간에 내려놓고 엘리야를 따른 것은 물론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그 일에 즉각적이고 온전히 순종한 엘리사 역시 소명이 이끄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아합과 이세벨이 사랑하는 삶의 무대로 이끕니다. 그리고 안정된 지위, 높은 자리, 풍성한 재물, 형통한 삶의 여정이 우리를 안심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왕국 전체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을 자랑했던 아합은 왕복을 벗고 변장을 하고 참전했다가 한 군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습니다. 서슬 퍼런 왕의 너무도 허무하고도 비참한 최후입니다.
이세벨은 창문 밖으로 내던져져 죽고 그 시체를 개들에게 주어 먹게 합니다.
왕궁에 이세벨이 있을 때에 누구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대단했던 그도 이렇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솔로몬은 잠언 11장 31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오늘 우리 삶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을 향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틈타 들어오는 세상과 사탄이 이끄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이 이끄는 삶을 결단하는 이 새벽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길은 비록 험할 지라도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어 모든 고난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