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설교 본문]
열왕기하 3장
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Joram son of Ahab became king of Israel in Samaria in the eighteenth year of Jehoshaphat king of Judah, and he reigned twelve years.
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He did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but not as his father and mother had done. He got rid of the sacred stone of Baal that his father had made.
3.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Nevertheless he clung to the sins of Jeroboam son of Nebat, which he had caused Israel to commit; he did not turn away from them.
[목요 새벽 설교 정성엽 전도사]
왕하3:1~12
<모압의 반란>
아합의 아들 여호람은 북이스라엘의 9대왕으로 동명이인인 남유다왕국 5대왕 여호람의 매형이기도 합니다.
여호람은 부친 아합이 이스라엘에 들여온 바알숭배는 배척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바알 대신에, 북이스라엘의 시조인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숭배를 다시 살려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여전히 범죄케 하였다고 합니다. 아합이나 이세벨과는 우상의 종류만 달랐을 뿐, 근본적으로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이 여호람의 시대에 이르러 그 동안 북이스라엘 왕국에 막대한 양의 양의 털로 조공을 바쳐왔던 모압왕국이 이스라엘을 배반하게 되자 여호람은 모압을 치기 위해 일어납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의 동편에 위치한 국가로 사해 건너편 사막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여호람의 할아버지 오므리는 모압을 복속시켜 막대한 조공을 받으며 국부를 축척해왔는데, 아합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전사하며 북이스라엘이 혼란에 빠지자 모압의 왕 메사가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람은 모압의 반란에 기민하게 대처하는데, 먼저 북이스라엘의 전체적 군사력을 가늠해 본 후, 누이 아달랴의 시아버지인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사돈어른인 여호사밧은 여호람의 부친 아합과도 동맹연합군을 결성한 적 있던터라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하였고, 여호람은 경륜이 높은 여호사밧에게 모압으로 진격할 작전에 대해 묻습니다.
여호사밧은 요단강을 건너 모압으로 진격하는 안정적인 북쪽침공루트를 택하지 않습니다. 호전적인 강대국들이 즐비한 모압의 북쪽국경은 침략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호사밧은 사해남쪽을 돌아서 군사적 방비가 소홀한 사막지대를 통과해서 모압을 치자고 제안을 합니다.
당시 남유다왕국은 남부 사막지대에 위치한 에돔왕국을 복속시켜놓은 상태라 사막길을 뚫고 군사작전을 감행하는데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써 무려 3개국 연합국이 모압의 반란을 응징하러 출전을 합니다.
그런데 물이 없는지라. 왕이 셋이나 모여서 펼친, 야침 찬 군사작전이, 고작 마실 물이 떨어져서 망하게 되다니.
이 세 명의 왕과, 왕의 참모들은 모두, 머저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 만한 사건이지만, 우리가 평소에 물을 얼마나 마시고 사는지 생각해보시면, 오늘 세 왕이 처하게 된 난감한 상황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은 6~70%가 물로 구성되는데, 이 중 10% 정도만 손실되어도 사람은 죽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모되는 체내 수분은 즉시로 보충해야하기 때문에, 70킬로그램 체중의 성인 남성 기준으로 하루 물 권장량은 2리터가 넘습니다. 육체가 하루동안 소모한 수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매일 이정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무더운 사막지역에서의 행군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식수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7일간 행군을 위해 개인이 필요한 물은, 식수와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까지 최소 20리터 이상입니다. 2리터짜리 페트병 10개를 들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시면, 병장기와 군장과 식량에 더하여, 개인이 먹을 식수까지, 고작 일주일치 생필품일지라도 사막 위를 행군하는 병사 개인이 지참할만한 양은 아닌 것입니다. 세 왕국의 연합부대가, 사막에서 열흘가까이 행군하기 위해서는, 병사와 가축이 먹을 식수를, 어딘가에서 별도로 공급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에돔왕국을 이 전쟁에 끌어들인 것도 사막지역을 다스리고 있는 일종의 사막지역 전문가인 에돔왕을 통해서, 식수공급을 포함하여 사막지역에서 펼치는 군사작전을 원활하게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막을 잘 아는 에돔왕은 오아시스나 식수를 얻을 수 있는 지역을 미리 수배하여 행군로를 계획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식수를 공급받도록 예정된 지역에서 식수원이 고갈되었다던가, 물이 오염되었다던가, 또는 행군속도가 목표치보다 늦어졌다던가, 애초에 세 왕이 세웠던 계획에서 벗어나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식수공급에 차질을 빚은 연합군은 나갈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절망적인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절망적인 환경에 처했을 때, 여호람과 여호사밧의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여호람은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한다’고 다짜고짜 하나님을 원망을 합니다.
전쟁을 시작한 것은 자기이면서, 책임은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 원망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께 돌린 원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위기의 상황에서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말씀부터 찾습니다.
사실은 출정 당시에, 출정여부부터 하나님께 여쭸어야 하지만, 위기를 만난 지금에서라도 각성한 여호사밧은, 황급하게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선지자를 찾습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이며 실제적인 관계를 체험해본 사람은 말씀으로 되돌아가는 반응의 속도에서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갑자기 선지자를 찾으면 하늘에서 뚝하니 떨어지겠습니까? 설마, 선지자가 사막에서 기습 군사작전을 펼치는 군대를 따라왔겠습니까? 그런데, 진짜로 따라왔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엘리사가 따라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안배해 놓으신 것이죠. 이런 큰 전쟁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는 여쭙지 조차 않은 불충한 이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그들의 곁을 따르도록, 미리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들이 세운 계획을 따라 움직이다 멸망의 직전에 이른 자들조차도,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곳이 사막 한가운데일지라도 당신의 뜻과 만날 수 있도록, 그들 곁으로 가까이 내려가 주십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한 우리지만, 그런 우리라도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먼저 이 낮은 곳으로 내려오셔서,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 그 형언할 수 없는 하늘아버지의 마음을 만나는 감격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여기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엘리사에게 갑니다. 그런데 이 때 엘리사에게로 가는 왕들을, 12절에서는 ‘내려간다’고 표현합니다.
성경은 왕들이 높은 곳에 쌓은 제단으로 올라가서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만나기 위해서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지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왕들의 머리 위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낮추고, 마음을 낮춰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지만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드높은 모든 영광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고작 우리의 마음 하나를 낮춰주시기 위해서 그분께서 직접, 그리고 먼저 낮은 곳으로 임해서 기다리시고, 우리와 함께 낮아져 주셨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사랑하는 하늘아버지의 말씀이 임하여 계신, 그 낮은 곳으로 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극히 낮은 곳으로 내려가 지고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 인간은 제아무리 바리바리 물을 싸다녀봤자 고작 일주일치의 마실 물을 들고 다니기도 버거운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힘과, 우리의 계획만으로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생명조차도 결코 부지해낼 수 없습니다. 왕들의 모사들이 모여서, 그 좋은 머리로 짜낸 계획일지라도, 마실 물 하나 마련하지 못하여, 수치와 패망을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는 다를 것 같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효율성으로, 이 땅 곳곳에, 도로, 교통, 수도, 가스, 전력 시설과 같은 튼튼하고 안전한 사회기반시설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땅거죽 살짝 흔들리는 지진이나 해일 한 번이면, 우리가 믿고 있는, 이 대단한 사회기반시설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이 한꺼번에 생명을 잃습니다.
원자의 내부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과학의 시대이지만, 새로 발견된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났을 때는, 수십억명의 인류가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싸들고 다니는 물이나, 우리가 공급받기로 계획 된 식수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첨단기술로 겹겹이 둘러싼 인간들이 만들어낸 안전장치들이 아닌, 먼저 낮디 낮은 우리 곁을 찾으셔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 지극히 낮은 이곳까지 임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있습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수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시고, 생수를 향하여 달려갈 길을 열어줍니다. 영혼의 생수가 되시는 이 말씀을 간절하게 붙들고 사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갈증이 느껴질 때, 물만 찾지 마시고, 영의 음료인 말씀, 말씀의 화신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찾으라는 하늘아버지의 간절한 마음도 꼭 기억해내셔서, 우리 곁으로 낮아지셔서, 우리 곁에서 언제나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만나고 체험하고, 누리시는 축복 가운데 거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