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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어디에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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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도톨 2020. 3. 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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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8일 주일설교요약
하나님, 어디에 계시나요(창39:1-3)
나의 가는 길 주님 인도하시네(CCM)

본문은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1∼3절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영적 관점’두 부분에서의 해석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 - 요셉이 애굽까지 노예로 끌려갔다. 보디발이 요셉을 노예로 샀다. 요셉이 보디발을 주인으로 섬기며 그의 집에 살게 되었다. 요셉이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보디발이 기특하게 여겼더라.
영적 관점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 보디발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보았다.

영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보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상해 보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형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요셉의 인생이 결딴이 난 것이고 망했다고 말해야 정상 아닌가요? 더 나아가 여호와가 함께 하셔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해되나요? 여호와가 함께 계셨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보디발의 집으로 가게 된 것이 형통인가요? 노예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집에 잘 팔려갔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정상인의 시각에서는 형통이라고 할 수 없지요.

이해를 돕기 위해 배경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17살이었던 요셉은 꿈 이야기를 했다가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되지만 정작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할 정도로 미워하는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세겜으로 양을 치러 간 형들의 사정을 살피고 오라고 보냅니다. 직선거리로 77 km 이고 세겜에서 도단까지 29 km 였다고 하니 100 km 가 조금 넘는 먼 거리를 찾아 간 것이었습니다. 도단에 도착한 요셉은 멀리서 형들을 발견하고 무척 반갑고 기뻤을 것입니다. 반가워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요셉을 본 형들은 요셉을 죽일 모의를 합니다. (창37:18)“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형들은 처음에는 요셉을 죽이려고 했으나 맏형 르우벤의 만류로 죽이지 못합니다. 채색옷을 벗기고 깊은 웅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르우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결국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애굽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려 갑니다. 오늘 본문이 전해주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이해불가의 상황, ‘하나님, 어디에 계신가요?’라고 절규하게 되는 상황이 찾아옵니다. 이런 이해불가의 상황을 영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해답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본다고 합니다. 요셉이 꾸게 된 꿈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필 도단에 물이 없는 웅덩이가 있던 것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입니다. 형들이 식사할 때 이스마엘 상인들이 나타난 것도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 간 것도 하나님의 개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보디발의 집을 주관하고 관리하고 다스린 경험도 하나님의 예비하심입니다. 결국 그 경험이 바로의 집, 애굽을 다스리는데 유용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등용할 때 (창41:40)“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고 합니다. 보디발의 집을 다스렸던 경험은 후일 애굽의 총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미리 준비시킨 것이요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과 항상 함께 계십니다
하지만 요셉에게 일어난 일들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고 첫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므낫세로 지었습니다.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창41:51). 형들의 적개심으로 애굽에 노예로 팔리게 된 사건, 그 이후 애굽에 살면서 견뎌야 했던 13년의 세월은 요셉에게 잊지 못할 트라우마였음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요셉과 항상 함께 계셨습니다. 요셉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에도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잠시 다녀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계십니다. 보디발 조차 하나님이 요셉에게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합니다(3절). 우리도 나와 항상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체가 형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자체가 형통입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에게 그런 자부심과 긍지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창37:18-20)“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요셉이 꾸었던 꿈은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을 망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계획, 혹은 큰 그림은 결국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가깝게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는 것이었고, 멀리는 야곱과 히브리 민족을 흉년의 시기에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시37:23,24)“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우리 삶에 임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아 드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고 우리 삶 속에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기적을 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