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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과 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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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도톨 2020. 3. 13.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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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본문]

열왕기하 10장

18.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Then Jehu brought all the people together and said to them, "Ahab served Baal a little; Jehu will serve him much.
19.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Now summon all the prophets of Baal, all his ministers and all his priests. See that no one is missing, because I am going to hold a great sacrifice for Baal. Anyone who fails to come will no longer live." But Jehu was acting deceptively in order to destroy the ministers of Baal.

[금요 새벽설교 최우윤 목사]

<열심과 전심>

- 설교본문 : 열왕기하 10장 18~29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 예후라는 왕은 북이스라엘의 열 번째 왕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서 예후가 왕이 될 것을 미리 말씀해주셨고, 엘리사가 그의 머리에 직접 기름을 부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후대 학자들은 그가 20대에 걸친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왕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후가 단행하는 종교개혁, 피의 숙청이 거의 끝나가는 절정의 시간입니다.
26~2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예후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우상을 섬겼던 요람과 아하시야와 이세벨을 죽이고 바알을 앞서서 섬기던 사람들을 다 숙청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목상들을 불사르고 신당을 헐어 변소로 만들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강도의 종교개혁은 성경 전체에서도 보기 드문 것입니다.
이렇게 예후가 자신에게도 쉽지 않았을 이런 대대적인 결단과 실행을 하게 된 동기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열왕기하 10장 1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예후가 여호나답을 만나는 장면에서 그에게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이라고 직접 이야기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여호와를 위한 열심’. 이것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특히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패역한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서 ‘여호와를 위한 열심’을 내는 왕이라는 것은 그 존재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조차도 잊거나, 엄두를 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뜨거웠던 우리의 열심을 식게 하고 무력화시키는 사단의 강력한 공격무기는 바로 우리 안의 욕심입니다.
욕심은 우리에게 열심의 농도를 희석시키고 나아가서, 도저히 열심을 낼 수 없는 상황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오늘 이 대단한 예후의 종교개혁은 안타깝게도 성경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으면서도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계보로 기록된 요시야와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예후가 인간적으로 이루어냈던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그를 크게 조명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10장 28~2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예후는 바알을 섬기던 요람, 아하시야, 이세벨을 죽이고, 바알의 신당을 불태우고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두루 다 죽였으나 단 한 가지,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는 부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 한 가지를 예후가 깜빡하고 빠뜨린 것이 아닙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세운 이 금송아지를 예후가 부수지 않은 것은 그의 마음 안에 이 열심을 희석시키는 사단의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예후는 모든 일을 여호와를 위한 열심으로 잘 감당해내고서도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를 없애지 못함으로써, 여호와를 위한다고 믿었던 자신의 열심이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우리에게 남기게 됩니다.

이런 연약한 예후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내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마음이 우리 안에 분명히 있지만, 사명자의 삶으로 삶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바로 우상 숭배와 다름없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 이면에는 우리의 욕심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10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성경은 예후의 인생 전체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30~3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였으나 전심으로 행하지 않았으므로 죄에서 떠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이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열심은 온도와 방향을 잃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은 열심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 없으니만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연약한 예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의 마음이 몇 퍼센트인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100% 하나님께 믿음으로 의탁하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99%, 80%의 열심은 시간이 지나 하나님이 아닌, 나를 향한 열심으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넘어서, 하나님을 향한 100%의 열심과, 100%의 전심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온 열심과 온 전심을 담아 승리하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