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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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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도톨 2020. 3. 14.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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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본문]

왕하 10:30~36
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31.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32. ○이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시매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
33. 요단 동쪽 길르앗 온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까지 하였더라
34. 예후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5. 예후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6.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는 스물여덟 해이더라

[목요 새벽설교 김영민 전도사]

<예후의 죄악>

할렐루야~
밤새 주무시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 감사함으로 오늘 하루를 예배로 시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비록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한 몸입니다.

저도 이제 40대 중반을 들어서면서 자꾸 요즘 얘기 보단 옛날 얘기를 많이 하게됩니다.
예전 헐리웃 영화 중 마이클 더글라스란 유명 배우가 나왔던 영화가 기억이 납니다.
영화 속 마이클 더글라스는 완벽한 남자입니다.
그는 미국의 마약단속을 하는 조직의 국장이였습니다.
마약 조직과 전쟁을 치르며 음모를 파헤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열정적인 남자입니다.
그러나 나라와 국민을 보호하는 남자인 그는 그의 가정은 잘 지키지 못합니다.
그 결과 아이러니 하게도 마약단속국 국장인 그의 딸은 심각한 마약 중독에다가 여러가지로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그 남자는 뒤늦은 후회를 하고 가정을 지키려 몸부림을 치는 그런 내용이였습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일터에서 완벽한 남자라고 해서 꼭 가정에서 좋은 남편, 아빠이진 않습니다.
나의 업무적인 능력과 가정에서의 남편, 아빠로서 필요한 능력은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우선 순위입니다.
일 때문에 가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일이 존재하는 이 우선순위를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고 또 착각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실수를 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엘리야를 통해 기름부음을 받고 북이스라엘에 왕으로 세워진 예후입니다.
그는 왕으로 세워진 뒤에 왕하 9장 7-10절에 나온 하나님의 명을 철저하게 수행해 갔습니다.

첫번째로 아합 집안에 대한 예언을 이루기 위해 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먼저 아합의 아들 요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아합의 친척인 유다 왕 아하시야 역시 죽였습니다.
그리고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아합의 아들들 70명을 사마리아 인들이 죽이게 만들고 아합 집안의 친척들, 지지자들 역시 몰살 시켜 버립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충실한 건지 지독한 건지 모르겠지만 길가다 만난 유다 왕 아하시야 친척들 42명 역시 몰살시켜 버립니다.
그뿐이 아니였습니다.

두번째로는 아합과 이세벨을 통해 이스라엘에 만연한 바알숭배를 일시에 몰아냈습니다.
당시 상황은 쿠테타로 정권이 바뀐 것입니다. 때문에 바알 숭배자들은 불안 했을 겁니다.
아합 정권은 친 바알 성향이였는데 예후는 어떨까??
그런데 예후가 선포를 했습니다.
난 더 친 바알 정책으로 갈 것이다. 자 새정권이 출범하는데 너희들이 모두 모여서 제사를 성대하게 드려달라.
이 계략에 속아 바알숭배자들은 일시에 죽음을 맞게되고 바알성전은 무너지고 그곳이 다시는 종교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화장실로 사용해 버립니다.

예후 그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3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인정해 주셨습니다.
충실한 사역의 결과로 예후의 왕조가 4대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31절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집니다. 그가 전심으로 율법을 행하지 않고 여로보암이 행한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네 여로보암의 죄… 하나님을 형상화 한 황금소를 예배하는 행위.
분명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가증한 행위, 인간이 원하는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죄를 예후가 그대로 반복한 것입니다.
이 여로보암의 죄가 무거운 이유는 이스라엘 왕은 세속의 왕들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그가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자이여야 하며, 하나님의 샬롬을 백성에게 구현해야하는 하나님의 대리인이자, 백성의 신앙을 바르게 인도해야 하는 목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후는 아합의 집안을 멸하고 바알숭배는 몰아냈으나 그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또한 왕으로서 해야할 의무는 제대로 행하지 않고 또다른 우상숭배를 한것입니다.

예후는 사역은 성공했지만 예배자로서 신앙인으로서는 실패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예후는 사역의 열매는 거두었으나, 32절 33절을 보면 예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역의 성패와 신앙을 동일 시 하곤 합니다.
사역을 너무나 열심히 하는 사역자, 봉사를 너무나 성실하게 하는 교회의 지체들, 예배 생활이 좋은 지체들이 당연하게 신앙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남만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런 기준으로 평가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봤듯이 사역의 성패와 신앙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좀 구체적인 사례를 얘기해 볼까요?
국내 CCM계와 찬양사역의 지평을 여신 사역자가 있었습니다.
당시 외국 번안곡이 대부분이였고 국내 찬양은 사실 음악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던 시절에 음악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참 수준있는 곡을 쓰셨습니다.
또 그분이 사역하시던 단체는 국내 찬양사역 단체들의 스탠다드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그 사역자가 만든 곡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도전받아서 또다른 사역자들로 자라나고 전국 교회의 예배에서 그 분의 곡들이 사용되어지고. 그런데 그 분의 사역이 정점에 다다랐던 그때 그분 개인적으로는 정말 말도 안되는 타락과 신앙적 바닥을 치고 계셨던 것이 밝혀져서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고 실족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또 몇 년 전 기독교 청소년 단체를 운영하시며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었던 한 사역자 분은 그 사역이 정점이던 시기에 말도 안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 밝혀져서 그 단체의 사역이 거의 와해 직전 까지 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었습니다.

또 최근 기독교 유튜버 중 다마스커스란 청년이 있습니다.
그 청년의 컨텐츠를 통해 많은 기독교 청년들과 기성세대들이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얼마전 그 청년이 고백한 글에 따르면 그의 컨텐츠가 유튜브에서 승승장구 하던 그때 그는 지독한 신앙의 회의감과 냉소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찬양인도를 해야하는 데 그날 저의 영적 상태는 엉망이였습니다. 싸우고 분노가 가득찬 그런 상황, 웬만하면 예배인도를 하고 싶지 않은 그렇 상황에서 섰는데… 그런데 그날따라 너무 은혜로운 예배, 찬양과 기도와 회개가 터지는 그런 예배였습니다. 혼란스럽죠. 이건 뭐지???

그것은 사역의 성공이, 내가 교회에서 하는 봉사의 열매가 내 믿음을 내 신앙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역의 성공과 봉사의 열매는 내 믿음이 내 신앙이 바닥이여도 하나님께서 사용하고자 하시면 이루어집니다.
설사 제가 도무지 예배에 설만한 상태가 아닐지라도 아니 99%의 회중이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예배에 기름부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착각을 합니다. 떄로는 알고도 자꾸 잊어버립니다.
내가 이렇게 사역을 잘 했으니, 내가 이렇게 봉사를 잘 했으니 나의 신앙은 나의 믿음은 좋은 것이다.
또 반대로도 얘기 많이하죠.
내가 요즘 믿음이 좋지 못해서 봉사랑 사역을 하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이것은 예후와 앞서 말씀드린 다른 분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예후 처럼 사역과 봉사는 성공적으로 해내고 거기에 따른 열매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역의 성공에만 집중하게되면 그리고 그 결과에 안심하게 되면 우리는 영적교만에 빠집니다. 난 이만하면 되었다. 하나님 전 저 사람들이랑 다르죠?? 전 이런 것 저런것도 하잖아요.
이런 영적교만에 빠지면 우리는 유혹에 빠지고 더 큰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또 사역과 봉사 자체에 지나치게 집중하게되면 행위 화복의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요즘 이런 사역 봉사를 못하고 있어서 그런지 믿음이 흔들리는 것 같아. 이런 정죄감 가운데 빠집니다.
이것은 내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이며 하나님을 우리의 행위에 따라 복주시는 분으로 끌어내리는 행동입니다.
또 사역과 봉사 자체에 지나치게 집중하게되면 우리는 기쁨이 없어지고 지치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자주 주변에서 듣는 얘기죠.
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일을 하는데 자꾸 지치고 힘들지??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네 예후가 그랬듯이 사역의 열매는 있는데 평안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먼저입니다. 사역, 봉사의 성패는 그 다음입니다.
늘 우리는 이 순서 문제에서 헤깔리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의외로 이 순서의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역을 봉사를 하지말라는 것 아니라…. 봉사자로서 그 사역을 공교히 준비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야 한다는 얘기 입니다.
하나님앞에 바로 서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하는 모든 사역들이, 봉사들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남성분들이 많이 빠지는 델레마입니다. 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도 열심히 하고 돈 많이 벌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점점 가정과 멀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아이들과 할 얘기가 없습니다.
내 노력이 수고가 부정 당하는 느낌입니다.
엄마들은 이런 딜레마에 빠지죠.
난 우리 아이가 성공하게 하기 위해서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하는데 아이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난 엄마의 인형이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마녀 같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생각해서 이런 저런 사역에 동참하고 봉사에 자원했는데 뭔가 점점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이런일이 생기는 이유는 우선순위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우선 순위되는 우리의 신분, 그리고 관계에 집중하지 않고 결과에 집중하면 관계가 파괴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모두 일을 해야하고 가정을 꾸리고 지켜가야하고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종종 성도분들과 나눔을 하다보면 이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돈도 벌어야 헌금도 하고 십일조도 하죠.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면 돈은 언제벌고 가정은 언제지킵니까? 돈을 벌지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제대로 설정하고 삶을 살아가라는 얘기입니다.

저 김영민의 신분을 정의하자면
첫번째가 하나님의 자녀인 김영민입니다, 그리고 두번째가 하나님이 제게 맡기신 가정을 보호하고 양육할 남편, 아빠 김영민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사역자 김영민입니다.
똑 같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하고 사는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집니다.
이 우선순위를 혼동하고 우리가 가장 우선해야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의 구원의의미는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관계 안으로 초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능으로 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렇게 남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길 원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딛고 있는 세상은 우리에게 결과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인지 우리는 자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가정에서도 결과를 우선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를 우선한 예후의 완벽한 사역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돌아보길 원합니다.
사역의 결과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와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맺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선이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기신 가정에서도 우리가 만나는 영혼들에게도 그렇게 관계가 우선 되길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하나님과 우리의 막힌 담을 허시기 위함 이였습니다.
관계의 회복!

사역의 성공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 앞에 바로서는 것,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 자녀로서의 삶을 누리는 것에 더욱 원하고 바라는 두레교회 성도분들 되시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