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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아스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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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도톨 2020. 3. 20.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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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예배 본문]

열왕기하 13장

1.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
In the twenty-third year of Joash son of Ahaziah king of Judah, Jehoahaz son of Jehu became king of Israel in Samaria, and he reigned seventeen years.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He did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by following the sins of Jeroboam son of Nebat, which he had caused Israel to commit, and he did not turn away from them.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So the LORDs anger burned against Israel, and for a long time he kept them under the power of Hazael king of Aram and Ben-Hadad his son.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Then Jehoahaz sought the LORDs favor, and the LORD listened to him, for he saw how severely the king of Aram was oppressing Israel.


- 본문 : 열왕기하 13장 1~9절

[금요 새벽설교 최우윤 목사]

<날마다 새롭게>

죄의 힘이 세고 또 무거운 것은, 우리가 하루에도 여러 번 지는 이 죄가 대부분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 26장 11절에 보시면, 어리석은 죄의 모습을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1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북이스라엘 210년 19명의 왕이 거쳐 간 역사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마다 돌이키고 돌아오기를 원하시지만,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모든 왕이 동일한 죄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예후가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된 후에도 역시 그가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가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보여주신 수많은 은혜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은 하나님 앞에 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또한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며 베푸신 수많은 은혜 가운데서도 우리는 여전히 감사보다는 간구를, 순종보다는 자기 자신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순간이 더 많습니다.
예레미야 3장 5절 말씀을 보시면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실체는 바로 이 욕심입니다.
이 욕심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우리의 믿음을 건드려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게 부강함을 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들의 불순종과 불신앙을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서 아람에게 계속적으로 시달리게 하십니다.
이 때 여호아하스를 잠식해 있던 욕심은 잠시 그 모습을 낮추고 자신의 자리를 조금 내어주게 됩니다.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하나님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모습을 감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때로 삶의 고난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우리 삶의 근원과 목적과 양식이 되는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하나님은 간구를 들으시고 구원자를 보내어 아람의 횡포 가운데서 북이스라엘을 건져 주십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고난 가운데 승리하고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오면, 앞으로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 맡겨지고 하나님이 전적으로 운행하시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와 구원 이후에 기록된 6절 말씀은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같은 고로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

특히 사마리아에 남겨진 이 아세라의 목상이 우리의 시선을 머물게 합니다.
이 아세라의 목상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예후가 신당을 없애고 목상을 불사를 때에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이 목상은 그의 아들 대에도 그대로 남아 자리를 지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욕심에 이끌리어 하나님의 손을 잠시 놓을 때에도 끊임없이 우리가 돌이키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믿음과 욕심 사이를, 영의 세계와 세상의 사이를 위태롭게 오고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고, 날마다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고, 날마다 하나님을 새로이 붙잡아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만이 우리 인생에서 믿음을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은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하나님은 비록 여호아하스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가운데에도 순종하지 못해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지만 그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으로서 북이스라엘을 향해, 그리고 우리를 향해,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비록 그의 아들 대에도, 또 그 아들 대에도 이 같은 죄가 반복되었지만 하나님의 기다림은 계속됩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열왕기서에서 끝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 연약하고 낙심하는 믿음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기다림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시편 68편 19절의 찬양을 우리의 마음을 다해 올려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오늘 시작하는 이 하루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을 독수리와 같이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새 마음으로 나아가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