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본문]
열왕기하 15장
1.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이십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In the twenty-seventh year of Jeroboam king of Israel, Azariah son of Amaziah king of Judah began to reign.
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He was sixteen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in Jerusalem fifty-two years. His mothers name was Jecoliah; she was from Jerusalem.
3.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just as his father Amaziah had done.
4.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The high places, however, were not removed; the people continued to offer sacrifices and burn incense there.
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The LORD afflicted the king with leprosy until the day he died, and he lived in a separate house. Jotham the kings son had charge of the palace and governed the people of the land.
[금요 새벽설교 최우윤 목사]
<웃시야의 큰 실수>
만 가지 일 중 단 한 가지..
성경전문 : 열왕기하 15장 1~7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사랴는 신복들의 배신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던 아마샤의 아들이자 남유다의 10대 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사랴가 분열왕국 시대에 스쳐 지나가는, 특별하지 않은 왕처럼 보이지만은 그가 재위했던 시대는 남유다 역사에서 손꼽힐만한 평화의 시대였고 강성한 시대였습니다.
역대하 26장 6~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고 가드 성벽과 야브네 성벽과 아스돗 성벽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에 성읍들을 건축하매 하나님이 그를 도우사 블레셋 사람들과 구르바알에 거주하는 아라비아 사람들과 마온 사람들을 치게 하신지라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여기에 등장하는 웃시야가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사랴와 동일 인물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왕이 열왕기하 15장에서는 단 7개의 구절에 등장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이 수수께끼와도 같은 성경의 기록에 대한 힌트가 오늘 본문 속에 드러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여기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게 하는 다소 생경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라’ 하는 것입니다.
불과 7개의 구절 밖에 안 되는 이 대단한 왕의 일대기에서 갑자기 그의 어머니가 등장하고, 심지어 이름까지 성경은 기록합니다. ‘여골리아’라는 말의 원어적인 뜻은 ‘여호와는 능력이 있다’, ‘여호와는 하실 수 있다’, ‘여호와께서 지배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의 어머니의 이름을 빗대어서, 그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시며, 하나님께서 일하시며, 끝날까지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는 삶이었다는 것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사랴는 강한 왕이었고 백성의 생업에까지도 세밀하게 손을 뻗친 선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시대에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특출났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이토록 한 시대를 형통한 왕으로 재위한 원천을 이렇게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6장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이제 우리가 한 시대를 풍미한 왕의 마지막을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3~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이 본문에서 보면 아사랴가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병으로 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오늘 아사랴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아사랴가 그 수많은 업적을 이루고도 다른 왕들과 같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은 오늘 그의 인생 전체를 통하여 그의 삶을 이끌어가고 형통케 하는 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들과 부국강병 그리고 태평성대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하여 하나님을 찾는 아사랴를 사랑하시고, 그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그에게 만 가지의 일이 다 형통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의 균형이 깨어지게 됩니다.
만 가지의 일들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으나, 그 한 가지가 변함으로 그의 인생은 비참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펼쳐지는 만 가지의 일 가운데 만 가지는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섭리 가운데 허락하시는 일이지만은, 단 한 가지, 이 만 가지 인생의 일들을 행하시는 이와 이 만 가지 일들 가운데 우리의 인생을 이끄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절대적인 믿음만은 흔들리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만 가지가 다 형통하여도 이 한 가지가 없다면은,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전도서 7장 1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형통한 날에나 곤고한 날에나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이라는 이 한 가지는 다른 만 가지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가운데 우리에게 펼쳐지는 만 가지 일들 가운데, 한 가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온전한 믿음을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루 가운데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많은 물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