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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의 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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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도톨 2020. 3. 2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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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본문]

열왕기하 15장

8. ○유다의 왕 아사랴의 제삼십팔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여섯 달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In the thirty-eighth year of Azariah king of Judah, Zechariah son of Jeroboam became king of Israel in Samaria, and he reigned six months.
9. 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He did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as his fathers had done. He did not turn away from the sins of Jeroboam son of Nebat, which he had caused Israel to commit.
10.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Shallum son of Jabesh conspired against Zechariah. He attacked him in front of the people, assassinated him and succeeded him as king.
11. 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The other events of Zechariahs reign are written in the book of the annals of the kings of Israel.
12.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사 대 동안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
So the word of the LORD spoken to Jehu was fulfilled: "Your descendants will sit on the throne of Israel to the fourth generation."

[토요 새벽설교 정성엽 전도사]

<스가랴의 죄악>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많은 예언들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들은 어김없이 성취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뤄지는 예후왕조의 멸망 역시 예후왕조가 개국할 당시에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주신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예후에게 임하였던 예언은 저주와 멸망의 예언이 아니라 축복의 예언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0장 30절에는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예후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들에게까지 왕위가 이어지도록 약속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의 210년 역사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무려 101년 동안 예후의 자손들은 이 예언으로 말미암아 왕위를 유지한 것입니다.
예후 왕조를 제외한 나머지 15명의 이스라엘 왕의 제위기간 평균이 7년이었던 것에 반해 예후왕조의 왕들은 그 세배에 이르는 평균 20년간의 안정적인 제위기간을 누렸습니다.
반정과 반역으로 뒤집어지며 피의 승계역사를 써내려갔던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안정적인 왕위승계가 지속된 왕조가 바로 예후왕조였습니다. 그리고 예후왕조의 4대왕 여로보암 2세 때는 북이스라엘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영토의 팽창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주셨던 예언의 말씀은 그의 순종에 대한 상급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00년의 시간이 지나 왕위에 오른 예후의 4대손 스가랴 왕에게 이 예언은 멸망의 예언이 되었습니다.
단 6개월의 제위기간은 이 예언이 신속하게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약속하셨던 100년의 시간은 축복의 시간이었을까요 아니면 멸망을 향한 카운트다운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약속하셨던 100년의 시간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 우리는 동시대를 살았던 선지자 한 분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오늘 살펴 본 스가랴왕의 아버지 여로보암 2세 때부터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던 선지자입니다.
나사렛 인근 갈릴리지역 출신으로 예수님께서도 고향 선배인 요나선지자의 일화를 복음서에 두 차례 사용하시기도 했습니다.
요나서의 시대적 배경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여로보암 2세의 치세 말엽인 BC 760년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요나서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니느웨 성읍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했다고 전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니느웨는 당시 북이스라엘을 끊임없이 위협해왔던 당대 중동의 최강대국 앗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니느웨의 정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칩니다.
니느웨로 가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경고를 니느웨 사람들이 받아 회개하여 하나님께서 그 회개에 자비로 응답하시면 어떻하나, 원수국을 향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하나님께 반항한 것입니다.

결국 도망가다 큰물고기에게 체포당한 요나는 재차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니느웨로 갑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빠져나온 요나는 니느웨까지 1000KM에 달하는 거리를 문자 그대로 산을 넘고 강들을 건너서 걸어가게 되는데, 도착 즈음에 요나의 몰골이 얼마나 꾀죄죄했겠습니까? 그런 몰골로 니느웨에 도착한 요나는 도착한 첫날에 다짜고짜 40일 후에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고 외칩니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돌을 던지던지, 신고를 해서 감옥에 가두던지, 아니면 비린내에 코를 잡고 피해가던지 할 것 같은데 느닷없이 요나의 말을 듣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후대의 학자들은 아마도 요나서에 기록되지 않은 어떤 징조들이 있었지 않나 추측합니다.
특히 BC 763년 6월 15일에 앗수르 전역에 개기일식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요나의 선포에 앞서서 이런 류의 어떤 초자연적인 징조들을 펼쳐놓지 않으셨을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앗수르의 왕은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하면서 국가 전역에 회개의 의식을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백성들에게 ‘너희들 회개 안하면 멸망시킬거야’ 이런 친절한 제안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배경 설명도 없이 멸망만을 선포하셨습니다.
40일 후에 니느웨는 멸망한다.
그런데 이 성의 없는 멸망의 선포에 피정복국가를 잔인하게 도륙내기로 정평이 난 안하무인의 앗수르 사람들이 바로 엎어져서 회개를 합니다.
혹시나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켜주실지, 바들바들 떨면서 왕부터 잿더미에 앉아 회개를 시작합니다.
이 모습을 본 요나는 억장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예언으로 시작된 자신의 조국은 지난 100년 가까운 시간동안 줄기차게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를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죄를 지으면서도 뻔뻔하게 회개할 줄을 모르는데, 예후에게 임했던 축복의 예언이 어느덧 임박한 멸망의 카운트다운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두려움도 모르고, 왕이란 작자나 백성이나 하나같이 깊은 죄의 늪에서 빠져나올 줄을 모르고 있는데, 이 원수 같은 앗수르 민족은 단 하루의 일갈에 즉시로 반응하여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 재를 뒤집어쓰고 납작하게 엎드리는 모습에 분통이 터졌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향해 그 어떤 구원의 암시도 없는 섬뜩한 멸망만을 통보하셨지만 니느웨는 하나님의 말씀에 회개로 반응했습니다.
혹시나, 혹시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수도 있지 않을까? 니느웨 사람들의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약속에도 없는 구원을 니느웨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는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구원해 주시는 자비의 화신이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심지어는 하나님께 화도 내고 역정도 부립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요나가 하나님께 성질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땡깡을 부리는 것이죠.. 그런데 요나 선지자가 믿음이 없거나 패역한 분이라서 그랬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선 어떤 분이신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신조차도 용서해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분명하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요나의 이 불손한 행동에도 전혀 그를 혼내거나 책망하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요나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 박넝쿨도 예비해 놓으시고, 벌레도 예비해 놓으시고, 뜨거운 동풍도 예비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요나가, 인류 전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감하고 하나님의 그 마음에 동참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하신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이런 착하신 인내를 너무나 잘 알고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 끝모를 인내와 자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요나가, 사랑하는 자신의 조국과 동포들을 향해서는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의 자비를 설파했었겠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이키자, 금송아지 치우고 진짜 구원자이신 하나님께로 제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약속하셨던 4대의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면 40대 400대로 이어질 영원을 향유할 축복의 예표다, 우리가 돌이키기만 하면 된다!

요나의 마음이 이러했을진데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겠습니까?
비록 이스라엘이 개국할 당시부터 단 한 번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아보신 적이 없으셨지만,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맺으신 사랑의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합한 종 다윗과 함께 하셨던 시간들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후손 예후에게 4대의 축복이 보장된 새로운 언약을 열어주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 4대의 축복을 영원으로 이어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셨습니다. 100년간 끝없이 이어져온 금송아지 우상숭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돌이킬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주시기 위해, 인내하시고 인내하시고 또 참아주셨습니다.

아람을 활용하여 채찍질도 하시고, 때론 불쌍히 여기셔서 숨통도 트여주시고, 엘리사에 이어서 요나나 호세야나 아모스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도 집중적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숭고하신 이 인내의 시간들을,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당신을 제대로 바라봐주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셨던 하나님의 그 착하신 마음을,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도 잔인하게 짓밟아버렸습니다.

이 사람들 도대체 왜 이럴까?
어떻게 이렇게 나쁠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올라오십니까?
이 때 우리 자신을 북이스라엘의 죄악의 역사 앞에 내려놓고 비춰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가랴 왕이나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보다 더 악했다고 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이 세대 사람들의 범주에 속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천국 가는 길을 밝히 설명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정죄 당할 수 있을 만큼 경계할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는 어떤 금송아지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하루되기를 바랍니다.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하셨던 하나님의 끝없는 참으심과 애절한 사랑의 마음을 기억하셔서 지금 내 속에는 옛적 르호보암의 금송아지가 어떤 형태로 위장해 있는지 발견해 내는 축복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 금송아지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걸 발견하고 내어놓기만 하면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우리를 지켜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을 무기한으로, 그리고 영원으로 연장하는 비법은 바로 회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작던 크던 내 안에 있는 금송아지 한 마리 발견하여 깨끗이 치워낼 수 있는 성과를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죄의 무거움에 짓눌려 해결할 수도 없는 죄책감에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죄를 발견하여 대면하고 하나님 앞에 재빨리 내어 놓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이미 준비하고 계시는 참된 자유 가운데 평안히 거하시는 오늘 하루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