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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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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도톨 2020. 4. 22. 05:22

본문

[새벽설교 본문]

열왕기하 20장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In those days Hezekiah became ill and was at the point of death. The prophet Isaiah son of Amoz went to him and said, "This is what the LORD says: Put your house in order, because you are going to die; you will not recover."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Hezekiah turned his face to the wall and prayed to the LORD,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Remember, O LORD, how I have walked before you faithfully and with wholehearted devotion and have done what is good in your eyes." And Hezekiah wept bitterly.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Before Isaiah had left the middle court,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Go back and tell Hezekiah, the leader of my people, `This is what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 David, says: I have heard your prayer and seen your tears; I will heal you. On the third day from now you will go up to the temple of the LORD.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I will add fifteen years to your life. And I will deliver you and this city from the hand of the king of Assyria. I will defend this city for my sake and for the sake of my servant David."

[수요 새벽설교 최우윤 목사]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심>

살아야 할 이유..

죽음은 우리 삶 전체를 관통하는 두려움을 지나, 우리의 육신의 삶을 종결케 하는 마지막 장엄한 관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에게도 죽음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전도서 7장 4절에서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죽음은 인생의 가장 큰, 최종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잠언 27장 1절에는 잘 아시는,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라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바로 한치 앞, 내일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갑자기 우리 인간에게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바로 이전까지만 해도 성경은 히스기야가 믿음으로 앗수르로부터 극적으로 승리하는 소식을 전하고, 남유다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산헤립의 비극적인 죽음의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곧 바로 20장으로 들어서서, 성경은 아무런 주변 설명이 없이,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왕으로써 큰 획을 긋고도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을 맞이하게 됩니다.
선지자 엘리야로부터 자신도 죽고, 자신의 모든 대가 다 멸절되고, 아내인 이세벨도 죽어 개들이 먹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전해 들은 아합은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면서 풀이 죽어 다녔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을 전함 받은 왕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지만은, 오늘 이 히스기야의 반응 역시 매우 드문 것입니다. 2~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히스기야는 자신의 죽음을 듣게 되는 이 순간에, 화를 내거나 풀이 죽거나 선지자를 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죽음의 소식 앞에서 히스기야가 보인 이 신실한 모습에 매료되지만, 이 기록을 우리에게 전하는 성경의 진짜 메시지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는 그 신실한 히스기야도, 죽음 앞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워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는 흔적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더해 주신다는 말씀을 이사야에게 듣고도 히스기야는 그 순간 기뻐하고 감사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실 징표를 보여 달라고 구합니다.
이사야가 이 질문을 받고, 해의 그림자가 10도 앞으로, 혹은 뒤로 가는 이적으로 답을 하면 되겠느냐고 묻자, 구체적으로 히스기야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아무리 신실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분열왕국 전체를 걸쳐 이만한 왕이 없었다고 기록되는 히스기야도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이토록 자유롭지 못함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사건, 이 말씀의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성경의 메시지는 히스기야의 신실함과 믿음에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우리 삶에 펼쳐지는 모든 일들은 마치 우연처럼 보이지만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의 문제 역시도 자연의 이치로 오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즉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히스기야가 죽는다는 이 소식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히스기야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간구하고 통곡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바뀌게 되는 그런 일이 가능할까,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히스기야의 간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신 것으로 보입니다. 5~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물론, 분명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과 같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뜻을 돌이키시는 것은 우리가 간구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26장 3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시는 그 마음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이어서, 요나서 3장 9~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십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의 믿음의 기도와 그가 왕으로서 행했던 신실한 업적들과 그의 눈물에 주목하고,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셔서 15년이라는 수명을 더해 주셨다는 그 기적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신 진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바로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남유다와 이스라엘을 지키고, 또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이 사명을 다시 한 번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연장된 삶을 통해 이스라엘과 만날 수 있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히스기야는 그토록 귀하게 얻은 15년이라는 새로운 삶을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내지는 못했지만, 오늘 죽을 병에 걸린 그가 수명을 연장 받는 이 엄청난 기적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목적을, 우리의 인생의 목적을, 우리의 이 땅에서의 존재 목적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사명이 있는 한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육신으로 살아서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사명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같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사명을 아직 우리가 이루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이 땅에서의 삶을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날이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 하루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세상에 내신, 우리 각자의 사명을 이루게 하시는 특별한 날입니다.

이 특별한 하루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과 깊이 만나고, 그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복된 이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