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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야김의 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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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도톨 2020. 5. 4.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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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본문]

열왕기하 24장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During Jehoiakims reign,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invaded the land, and Jehoiakim became his vassal for three years. But then he changed his mind and rebelled against Nebuchadnezzar.
2.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The LORD sent Babylonian, Aramean, Moabite and Ammonite raiders against him. He sent them to destroy Judah, in accordance with the word of the LORD proclaimed by his servants the prophets.
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Surely these things happened to Judah according to the LORDs command, in order to remove them from his presence because of the sins of Manasseh and all he had done,
4.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including the shedding of innocent blood. For he had filled Jerusalem with innocent blood, and the LORD was not willing to forgive.

[월요 새벽설교 정성엽 전도사]

전문 왕하 24:1~7

<여호야김의 죄악>

이렇게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모인 오늘인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남유다의 멸망,바벨론의 침략과 제1차 바벨론 유수에 관한 기록입니다.

바벨론을 배반한 유다의 18대왕 여호야김왕은 남유다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이후 20년간 이어진 바벨론의 3차례의 공격을 받고 결국 남유다왕국은 멸망합니다.
그러나 이 멸망의 기록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소망의 불씨와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을 사랑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들까지 축복하사 무려 5백여년을 한 혈통으로 왕조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의 당, 송, 명, 청나라가 각각 300년 전후의 역사를 이어간 것과 비교한다면, 히타이트, 애굽, 앗수르 등 고대 세계의 초강대국들조차 투쟁의 역사 가운데서 명멸해갔던 생존의 각축장 메소포타미아 지역 한 복판에서 한 사람의 혈통이 한 지역을 500년간 통치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랬던 다윗왕가가 마침내 그 종착점에 다다릅니다.

500여년간 이어온 다윗왕가는 크게 3차례의 멸망의 위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솔로몬의 우상숭배와 이로 인한 왕국의 분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셔서 그의 후손으로 인간의 왕조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단 조건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바로 다음 왕인 솔로몬 대에 이 축복의 약속은 사실상 파기됩니다. 솔로몬이 이방의 우상들을 이스라엘에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둘로 쪼개서 오히려 축복의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주십니다.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아 북이스라엘 왕조를 열게 된 여로보암은 그러나 자신의 당대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와 하나님에 대한 배반의 상징으로 그 이름을 성경 속에 수치스럽게 남기게 됩니다.

남유다왕국의 초기 80년간은 아사, 여호사밧 같은 훌륭한 왕이 등장하여 다시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을 재현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가와 교류하면서 남유다로 스며든 악의 씨앗이 다윗왕가를 멸망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다윗왕가의 두 번째 위기는 다윗의 왕가에 시집 온 아합의 딸 아달랴에 의해 일어납니다.
왕위에 오른 남편과 아들을 모두 악한 왕으로 만들었던 아달랴는 왕이었던 아들이 죽자 스스로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 다윗의 나머지 혈통들을 모조리 잡아 죽입니다.
아달랴의 반란으로 끊어질 뻔했던 다윗의 혈통을 하나님께서는 1살 된 어린 왕자 요아스를 통해서 이어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후 140년간 이어진 선한 왕들의 등장으로 다윗 왕가는 주변 강대국들이 명멸하는 격랑의 시대 가운데서도 굳건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의 세 번째 위기는 대제국 앗수르의 침략으로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한 시기에 아하스 왕으로 인해 촉발됩니다.
시대적 위협 앞에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주변 국가들의 온갖 우상을 유대땅으로 들여와 하나님에 대한 순결한 예배를 더럽힌 아하스로 인해 남유다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방의 빛으로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당시 세계를 파죽지세로 휩쓸었던 앗수르제국의 위협 앞에 남유다는 상한 갈대와 같은 애굽에나 의존하는 비루한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번 더 다윗을 돌아보셔서 그의 자손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는 풍전등화와 같았던 남유다를 하나님 앞으로 돌이키고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또 다시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죽자 그의 아들 므낫세와 아몬은 57년간 남유다를 북이스라엘보다 더한 우상의 소굴로 만들고 예루살렘을 무죄한 사람의 피로 잠기게 하는 악을 저지릅니다. 이는 형제국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목격한 직후에 곧장 하나님을 배반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무수한 축복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왕조는 결국 인간의 길로 향한다는 사실을 확증하여 주었습니다. 므낫세의 죄악으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에 내리셨던 심판을 다윗의 왕가에게도 내리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와 그의 아들 아몬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바로 심판을 결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역대 유다 왕 가운데 가장 선한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요시야의 31년간의 통치를 멸망의 목전에서 허락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요시야 왕의 통치기간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원형 그대로 복원된 시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요시야의 재위는 전대왕들의 만행으로 인해 율법서조차 사라진 황무한 데서 출발하였습니다. 모세로부터 이어져온 예배의 전통과 규례가 기록된 율법서조차 사라진 시대에서 요시야는 오로지 하나님을 향한 열심만 가지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재위 18년, 분실되었던 율법서를 발견한 그는 율법이 제정된 이후 예배가 가장 철저하게 지켜진 경건의 시대를 열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정직했던 그도 남유다의 멸망은 막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죽음은 허무하기 이를 데 없어 보입니다.
역대하 35장 20절에 보면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요시야는 성전과 예배제도를 이스라엘 땅에 다시 회복시키자마자 바벨론과 대적하기 위해 진군하는 애굽왕과 맞서 싸우다 죽임을 당합니다. 애굽왕은 '유다 왕이여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초대도 하지 않은 남의 나라 싸움에 끼어들다가 어이없이 죽은 것입니다.
그의 죽음이 지니는 의의에 대해서는 분분한 해석들이 있지만 그가 무리해서 애굽왕에게 대적한 일로 인해 유다는 단숨에 멸망의 수순을 시작하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요시야를 죽인 애굽왕은 요시야의 아들에게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리게 하고 애굽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립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애굽에 종속된 남유다는 당대 최강대국 바벨론에 대적하게 되고 결국 바벨론에게 멸망을 하게 됩니다.
요시야의 예배회복은 남유다의 멸망을 막지도 못했고 오히려 애굽왕에 대한 무리한 도전으로 남유다의 멸망이 앞당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윗으로부터, 아니 창세기 3장 15절의 에덴의 약속으로부터 이어져왔던 하나님의 구속사 관점에서 볼 때 요시야의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한 죽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는 남유다의 멸망 직전 시기에, 단절될 뻔했던 여호와 의식을 이스라엘 땅에 되돌려 놓았습니다. 모세의 율례에 따른 예배를 철저하게 회복했던 요시야로 인해서 이스라엘 땅에는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율법의 규례와 함께, 광야에서 나그네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 주셨던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멸망의 시대가 이르기 직전에 요시야란 빛이 비춰주신 목적은, 요시야를 통해서 하나님 의식을 이스라엘 땅에 원형대로 되살려 놓으신 이유는 예정된 멸망 이후 시대를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오늘 3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멸망을 여호야김의 증조할아버지인 므낫세 때에 이미 결정하셨습니다. 인간의 혈통으로서의 다윗왕가에게는 이미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주셨고 다윗왕가에 500년간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은, 인간이 가진 의로는 결코 하나님의 의에 닿을 수 없음을 확인하고 증명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 왕가까지 육신의 혈통을 통해서 이어져 왔던 에덴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요시야의 경건했던 삶은 다윗왕가의 육의 혈통을 연명하기 위한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영적 이스라엘의 전통을 세우는 장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벨론 유수는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는 500년을 이어온 남유다왕국 멸망의 시작이지만, 영적 관점에서 볼 때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인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제1차 바벨론 유수는 일종의 하나님의 스파이 파송작전이었습니다. 70명 되는 야곱의 가족을 20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성장시키는 인큐베이터로 풍요로운 애굽땅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먼저 요셉을 노예로 팔려가도록 허락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바벨론 유수를 통해서 바벨론의 풍요로운 물질문명에도 정면으로 맞서서 영적 이스라엘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는 정결한 소년 4명을 먼저 바벨론으로 파견해 놓으십니다.
다니엘과 3명의 친구들은 오늘 본문의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으로 파견 됩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전에 다니엘과 3명의 친구는 요시야 왕이 다스리던 유다땅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강력하고 순결한 하나님 의식으로 무장할 수 있었습니다. 요시야 왕의 업적은 세계의 미스테리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나게 풍요로웠던 바벨론의 물질문명 세계 한복판에서도 하나님 의식만을 꼿꼿하게 세우고 살아갔던 다니엘과 같은 엄청난 영의 사람들을 길러냈다는데 있습니다.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가운데 단절 될 뻔했던 하나님 의식을 되살려낸 요시야로 인해 남유다는 멸망의 뒤안길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영적 인재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는 애굽왕 앞에서 허무하고 비참하게 스러져갔던 것처럼 보이는 요시야의 뒷모습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때는 영적 이스라엘로 가는 길을 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100% 달성한 후 퇴장하는 성실한 일꾼의 당당한 뒷모습이었습니다.

남유다의 멸망으로 이스라엘은 다시 고향을 잃은 나그네로 돌아갑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국 다시 나그네로 돌아갑니다. 성경 속 기록들은 이 땅에서 이룩한 우리의 왕국은 결국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자손들일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성전을 가진 민족일지라도 인간의 혈통으로는 결국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3천년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보다 더 악한 종자들로 이루어졌던 집단이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그네로 돌아갈 때만 하나님 의식이 회복됩니다.
나그네 정체성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선택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게 됩니다.
머리 누일 곳조차 없으셨던 우리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의 우리의 정체성은 나그네인 것입니다.
우리가 나그네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다니엘을 일으키시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영적 이스라엘로 세워지는 첫걸음은 육의 왕국이 멸하고 나그네로 돌아가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땅을 나그네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역사를 이해하고 현재와 미래를 통찰해 내며 이 땅을 살아갔던 요시야와 다니엘과 같은 멋진 인생들이 우리 두레교회에서도 많이 많이 나오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들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에 속한 사람들로 이 땅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