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본문]
베드로전서 1장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Now that you have purified yourselves by obeying the truth so that you have sincere love for your brothers, love one another deeply, from the heart.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For you have been born again, not of perishable seed, but of imperishable, through the living and enduring word of God.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For, "All men are like grass, and all their glory is like the flowers of the field;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s fall,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but the word of the Lord stands forever." And this is the word that was preached to you.
[목요 새벽설교 정성엽 전도사]
전문 ~벧전2:10
<영으로 태어난 사람>
우리 기독교는 초대교회 시절부터 책의 종교라는 별칭이 따랐을만큼, 예배와 신앙활동의 중심이 바로 이 성경에 근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의 한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낭독하신 이후로, 지난 2천년간 성경봉독은 언제나, 예배의 중심에 있어왔습니다.
우리가 길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설교나 신학 이전에 성경 자체가 중심이 되어 굳건히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예배로 나아가면서 본문을 읽을 때, 우리가 좀 더 마음을 다해,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 한 번 시도해 볼까요?
일단 집중을 위해 마음을 한 번 가다듬으시고..
읽으시면서 가슴에 와 닿으시는 말씀이 있으신가요? 혹~시나... 한 번 읽으시고 내용정리가 되시는 분이 계시나요?
사실 오늘 본문은, 담임목사님이라면 40분짜리 설교를 최소 3편 이상은 하셨을, 방대한 내용을 담은 본문이라서, 한 번 읽고 정리가 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겁니다.
그러나 말씀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집중하고 애쓰고 노력하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말씀을 주제로 하여서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말씀과의 관계 가운데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내용상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각 부분마다 말씀을 색다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첫 부분에서는 말씀을 진리로, 두 번째 부분에서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산 돌, 또는 보배로운 모퉁이 돌로 비유하면서 이 말씀에 순종하도록 택함을 입은 우리들의 신분이 무엇인지 선포해 주십니다.
첫번째 부분은 1장 22절로 25절입니다. 22절에 영혼이 깨끗하여 졌다,는 말씀은 요즘 담임목사님께서 강조하시는 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영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은, 진리, 곧 말씀을, 순종함으로 가능해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살아있고, 항상있고, 세세토록 영원하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살아있다 함은 문자로 된 기록이 실제 삶의 현장에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이 구절을 읽을 때 마음에서 왠지 모를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얼마 전 투닥거렸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리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살피기 위해 기도가 나오게 되고, 기도하던 중 마음이 일어나 전화기를 잡고 민망한 말을 먼저 꺼낼 용기가 생기고, 빡빡한 시간과 재정을 쪼개서 식사를 먼저 청하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이런 일들이 진리가 현실 가운데서 생명을 얻어 일으키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22절에서 ‘뜨겁게’란 표현은 4장 8절에서도 한차례 더 나오는데 원어의 뜻은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켜’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에너지가 어디 쉽게 나옵니까? 저는 부인 한 분 잘 건사하기도 때론 수월찮은데... 그런 우리의 현실적인 연약함을 초월하게 해 주는 것이 진리의 말씀이란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생성 되냐면 항~상있고, 세세토록... 영원하게 고갈되지 않도록,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통해 우리에게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켜’ 뜨겁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명령하시지,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라고 닦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 이 전에 우리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힘이, 마르지 않고 솟아올라, 문자 그대로, 끊임없이, 그리고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그저 우리가 참고할만한 격언이나 경구가 아닙니다.
연약한 우리가 항상 그리고 세세토록 살아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적힌 내용을 문자적으로 머리에만 담고,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행하려 한다면, 잠깐, 반짝이다 지치고 금세 고갈되게 되거나 비뚤어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그리고 세세토록 그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말씀 안에 거하며, 말씀과 함께 호흡하고, 말씀과 인격적으로 교제해야 합니다.
말씀이 움직이라고 감동을 주시면, 내 처지를 가늠하거나 돌아보지 않고 즉시 순종하여 움직이고, 말씀이 멈추라고 하면 내 힘이 남아있는 듯 보여도 즉시 멈추는 순종.
담임목사님 표현으로는 주동나동 주정나정 그러셨는데, 주님 말씀 하시면 그대로 따르고, 주님 뜻이 아니면 멈추는 훈련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지적인 앎이 전부가 아닙니다. 관계가 먼저입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과의 감사와 존경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에 터 잡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개인의 삶 가운데서 기억하고 적용하고 체험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하늘아버지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지켜주신다고 오늘 본문에서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두 번째 부분은 2장 1절에서 3절로, 여기서는 말씀을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담임목사님께서 지난 2월 9일에 ‘신령한 음식을 사모하라’는 주제로 하신 주일설교의 요약을 한 번 더 묵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부분에서 말씀은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고 설명드렸습니다. 말씀은... 주부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차려내는 식탁 안에 담겨 있는 그런 사랑, 우리를 향하신 창조주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신령한 음식입니다. 그러나 영으로는 죽은 거나 진배없는 상태로 태어난 우리는 애초에 영적 배고픔조차 감각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은 영의 양식인 이 말씀을 의식적으로 간절하게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권장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따르다보면 우리도 말씀이 주시는 풍성함을 느끼는 감각이 발달하게 되고 어느새 자발적으로 말씀의 맛을 찾게 되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2장 4절에서 10절까지로, 말씀을 산 돌, living ston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버린 돌맹이와 같은 자신이, 새로운 건물의 주춧돌로 사용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시편 118장을 인용하신 것인데요.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여기에, 이사야 8장을 인용하여서,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았으나, 그 버려진 곳에서 새로운 지경을 열어, 인류 전체의 구세주로 살아나신, 예수그리스도 자신이, 말씀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600년간 메시야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막상 메시야가 오시자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가치없는 돌덩어리 취급하여 버려버립니다. 그러나 인간이 버린 돌덩어리 위에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를 쌓아 올리셨습니다.
스스로 말씀이 되어 이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님 위에 우리의 믿음을 쌓아올리면 비가 오고 물이 나도 넘어지지 않는, 튼튼한 인생의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됩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모든 일에 예수님을 주춧돌로 삼아 그 마음과 행실과 삶을 쌓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버린 돌 취급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주춧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됩니다.
그냥 걸리적거리는 돌맹이가 아니라 앞을 막아버리는 바위가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말씀이신 예수님을 삶의 주춧돌로 삼는 사람은, 많은 부분에서, 세상과 불화하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를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는 것은 우리의 주춧돌 되신 예수님이 먼저 세상에게 버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세상의 평가에 흔들림 없이 말씀을 따라야 하고, 말씀을,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유일한 진리로 굳게 믿어야 합니다.
2천년 전에는 통했던 말씀이 이 시대에는 수정되고 변경되어 적용되어야 할까요? 2천년 전에 성경에서 초등학문이라고 평가했던 이 세상 학문들이,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을 등에 업고 중등학문이나 고등학문으로 진보했을까요?
성경에 비할 때, 세상의 최신 학문들과 최신 과학들은 2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진리의 단편 단편들을 살피고 이해하는데 조금 더 유용해진 도구일 뿐입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 그 자체이며, 창조의 비밀과 하늘의 사랑을 담아놓은, 인류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우리는 경이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선물에 믿음으로 순종하도록 택함을 받은 우리의 신분을 오늘 말씀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함께 2장 7절부터 10절까지 큰 소리로 한 번 합독하겠습니다.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아멘
찬양 한 곡 함께 하시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늘아버지. 오늘 우리로, 살아있고 항상있고 영원히 능력으로 주어지는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영으로 태어나서 창조주의 사랑이 담긴 말씀을 자발적으로 찾는 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말씀 자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춧돌로 삼아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세상 초등학문에 현혹되지 않고 이 세상과 불화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켜내는 복된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우리 개인의 영혼이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르지 않는 사랑의 능력을 나타내는 영의 사람으로 우뚝 설수 있기를 소원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말씀과 말씀 아닌 것이 교묘하게 혼재된 이 세상에서 참된 말씀을 주신 뜻대로 명확하게 분별해 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 두레교회가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로만 주춧돌을 삼아 말씀으로 흥황하는 이 시대의 빛된 교회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하늘아버지 한 번 간절히 부르시고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