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본문]
베드로전서 5장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Be self-controlled and alert. Your enemy the devil prowls around like a roaring lion looking for someone to devour.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Resist him, standing firm in the faith, because you know that your brothers throughout the world are undergoing the same kind of sufferings.
전문 벧전5:7~14
[월요 새벽설교 정성엽 전도사]
<염려를 주께 맡기라>
오늘 본문을 시작하며 베드로는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어제 우리는 염려하지 말라는 주제로 주일말씀을 받았는데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염려에 대한 강력한 권고를 받게 되었는데요, 우리 모두 어제 받으신 말씀을 잘 새기면서 염려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지극한 자유에 이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여는 동사인 ‘맡기라’는 ‘던져버려라’, 또는 ‘내팽겨쳐라’ 더 나아가 ‘토해버려라’ 이런 정도의 강렬한 감각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토해내라.
원래 구토는 몸을 해치는 무언가가 들어갔을 때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반응입니다.
농약을 먹어 응급상태에 이른 사람에게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 강제로 토하게 만듭니다.
우리 마음이 염려를 마셔버리면 염려는 농약처럼 우리 영혼을 치명적으로 해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염려라는 독에 만성이 되어 염려에 쩌들어있는 내가 원래 나인줄 알고 살아가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 앞에 다 토해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저 마음 따뜻해지라고 주시는 위로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전시작전명령입니다. 다음 절에 이어지는 사탄과 대적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기초 체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체내의 염려를 하나님 앞에 토해내는 작업이 선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내 영혼을 죽이고 있는 극독입니다.
독을 중화시키는 약을 먹어 생명을 부지해도, 근본적으로 체내에서 배출하지 않으면 결국은 약으로 연명하는 기운 없는 인생으로 밖에는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탄과 대적하여 승리하고 이기는 건강한 삶은 꿈도 꿔볼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염려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이 염려의 근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의 ‘맡기라’는 동사는 헬라어 원문성경에서는 앞선 6절의 겸손하라를 수식하는 분사구 형태입니다.
6절과 7절을 연결하여 우리말로 다시 해석하게 되면 너희 염려를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맡기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염려를 맡기는 행위가 겸손이란 것입니다. 반대로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것은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것이 어째서 교만일까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결핍의 연속입니다.
돈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하고 건강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항상 오늘의 부족과 내일의 필요들을 채우기 위한 계획들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가운데 현재의 결핍이 체감되고, 미래의 결핍이 예측될 때 염려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염려의 문제를 살피기 위해서는 이 결핍의 근원을 살펴봐야 합니다.
창세기 3장 17절 이하를 살펴보면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결핍은 원죄의 직접적인 결과물이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의 댓가로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결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었을 당시 에덴동산을 통해 공급해 주셨던 무한의 자원을 거두시고, 노동이라는 고된 댓가를 지불하여야 얻을 수 있는 한정적인 자원만을 허락하셨습니다. 따라서 결핍은 인류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결핍을 인간의 손으로 해결해 보려는 모든 시도는 궁극적으로 다 헛되며,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우수한 과학기술과 경제제도도 안정성과 효율성, 또는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맞추어 결핍의 해소에 궁극적으로 성공한 선례는, 인류 역사 가운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인 결핍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결핍 또한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는 체계적인 인간정신분석과 연구를 통해 인간 내면 허전함이나 외로움, 우울과 같은 정서적 결핍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관점을 달리해서 어떤 초월적 영역을 상정한 정신적인 추구나 수련을 통해서 정신세계를 채워보려고 애를 씁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정서적 결핍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정서적 결핍은 애초에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인간이 분리됨으로 발생한 현상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떠한 독자적인 노력도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인간이 해결한 듯 보이는 결핍은 언제나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결핍을 나을 뿐입니다. 과거의 결핍을 개선한 듯 보일 때조차도 새로운 염려의 경지를 개척할 뿐입니다. 결핍을 허락하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왜 결핍을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결핍을 허락하신 이유는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영으로 분리되어 버린 자녀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8장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물도 없고 먹거리도 없는 결핍의 땅 광야를 걷게 하신 이유를 설명해 주시는데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광야길로 내모신 이유는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훈련시키기 위함이며,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풍요를 맛볼 때도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죄성에 물든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은,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풍요의 현장이 아닌, 하나님밖에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결핍의 자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결핍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호출하시는 신호인 것입니다.
나를 기억하라! 너 지금 나를 잊고 있어! 자, 이제 눈을 들어서 나를 봐라!
성경을 펼쳐라! 기도의 자리로 나와라!
지난주 들은 말씀 기억해봐!
나와 함께 걷자 내 아들아!
내 품안에서 평안을 누려라 내 딸아!
결핍상황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시는 음성인 것입니다.
우리는 결핍상황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결핍상황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창조주의 사랑의 음성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주권자 사탄은 우리 시선을 결핍 자체에 고정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결핍 상황을 스스로, 그리고 빨리 해결하라고 재촉입니다.
상황을 급박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할 틈을 주지 않고 우선 내 맘대로 발걸음을 내딛고 보도록 만듭니다.
인류 역사 내내 사탄이 시도해 온 이 끊임없는 공작에 길들여진 우리는, 결핍상황이 인식될 때마다 관성적으로 하나님 없이 내가 결핍을 해결하려 합니다.
이 때 생성되는 독이 바로 염려인 것입니다. 결핍을 인식한 다음 반응이 하나님 외의 다른 해결방법으로 향하게 될 때 염려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결핍상황에 시선이 고정될 때 우리 마음속 염려가 활성화 되고 사탄은 우리 마음 속 염려들로 견고한 진을 구축합니다.
염려는 결핍된 환경이라는 인생의 시간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벌이는 인간의 모든 독립적인 노력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없이 결행되는 그 모든 의지들을 성경은 교만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하지 않는 모든 마음들을 이르는 것입니다. 결핍된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찾고 당신에게 의지하는 기회를 주시고자 부르시고 계시는데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눈을 돌려 썩어질 것들에 의지하는 방향으로 나가곤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방향성을 염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며, 이 현상을 교만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결핍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배제시키는 행위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핍의 상황이 우리 시선을 붙잡고 염려를 불러일으키려 할 때 우리는, 결핍의 상황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혼자서 뭔가를 해보려고 아둥거리면서 염려의 독을 마음에 쌓을 것이 아니라, 결핍이 인식될 때는 즉시로, 반사작용처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떠올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염려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 토해내어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에서 토하라 하셨으면 우리는 그저 잘 토해내면 됩니다. 잘 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허리를 깊숙이 굽혀야 합니다.
눈물 콧물 쏟아내고 모양이 흉하게 일그러지더라도, 잘 토하려면 바싹 허리를 숙이고 토해내는 일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허리를 깊숙하게 숙이시고 지금 내 두렵고 아픈 심정을 깊이 토해내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늘아버지께서 오늘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를 하나님께 토해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돌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혹독한 결핍의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는 안전한 것입니다.
결핍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조금도 해하지 못합니다. 오늘도 염려되는 결핍의 상황이 다가올 때 상황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생명의 주인 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신호로 삼아,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앞으로 나아가, 허리를 깊이 숙이고, 눈물과 콧물을 함께 쏟으며, 내 속에 염려라는 독이 정착하지 못하도록, 다 토해내시기 바랍니다. 염려되는 상황을 만날 때마다, 그 상황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사랑의 음성으로 바꾸어 인식하는 훈련을 반복해나가면서, 결핍의 상황을, 염려할 신호가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로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강해집니다.
사탄과 싸울 수 있을만큼 강해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염려라는 독을 토해내고 우리 체질이 튼튼해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탄의 세력을 초토화시킬 하늘나라의 군사작전에 징집하시게 됩니다. 염려를 다 토해내고, 창조주 하나님의 대적을 쳐서 무찌르는 영광의 자리로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그 걸음을 우리 모두 함께 떼어보시길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영혼은 안전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필요는 하늘아버지께서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의 염려와 걱정은 우리 영혼의 주인되신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상임을 주님을 의지하여 선포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주의 어린 자녀들이 인생의 결핍의 순간마다 삼켜왔던 모든 염려들을 이 시간 참 좋으신 하늘아버지 앞에 다 토해놓고자 하오니 우리를 돌보아 주시옵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아버지. 우리가 더욱 튼튼해져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대적들을 맞아 싸워이길 수 있는 장성한 자녀로 커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모든 상황 가운데서 하늘아버지와 동행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