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갇혀있던 사도 바울이 박해의 위협을 받고 있던 빌립보 교인들에게 ‘모든 일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1. 이 세상은 염려가 가득합니다
염려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들에 계속 신경을 쓰는 것이고, 앞으로 불길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미리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염려는 온 인류를 감염시킨 영적 팬데믹 증상의 하나입니다. 모든 인간의 심성이 염려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염려의 발원지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뒤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벗은 것을 알고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몸을 숨긴 것이 염려의 시작입니다(창3:10).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의 처벌을 받아 유리방황하는 삶을 살게 된 가인이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4)라고 항변한 것도 미리 앞서 염려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갈 때 아리따운 아내로 인해 자신이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도 염려입니다. 아브라함의 지각에 근거하여 충분히 그런 염려를 할 시대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모세가 파송했던 열 두명의 가나안 정탐꾼 가운데 열 명은 가나안으로 올라가면 죽는다고 보고했는데, 그것은 합리, 이성, 사실, 논리, 지각을 근거로 한 염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염려를 공유한 이스라엘 백성이 밤새 철야 대성통곡을 합니다. 염려가 전쟁을 시작도 하기 전에 항복하고 패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염려는 온 인류의 심성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2. 인간의 지각보다 높은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염려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지각을 넘어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요단 지역을 차지한 후 아브라함에게 염려가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창13:14)고 하십니다. 눈을 드는 것은 지각의 한계를 넘어 영의 세계와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의 거인들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여호와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선포합니다.
시편 121편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고 합니다. 눈을 들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를 바라봅니다. 눈을 드는 행위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을 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물위로 걸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걸을 때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풍랑이 이는 바다조차 반석과 같이 걸었지만 바람을 보고 염려하는 마음이 올라오자 바다로 빠졌습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모든 염려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3. 감사함으로 구하여야 합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함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미리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바다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를 건져주시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정체나 능력을 순간적으로 의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끝까지 신뢰했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멋진 장면이 되었을 것인데,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4.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지킨다’는 도시나 성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막아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영역을 지켜주십니다. 그것은 사탄의 공격을 막는 것이고, 영적 전쟁에 승리하여 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는 바람이 불고 풍랑이 높이 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물에 빠질 때 풍랑을 잔잔케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신 후에 바람이 그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상황을 바꾸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베드로를 건져내 주시고 베드로의 마음의 평안과 믿음을 회복시키신 후 상황이 해결된 것입니다. 바다의 바람과 풍랑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신뢰하고 평강을 누리는 사람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상황은 바뀌지 않을지라도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핵심입니다. 문제와 장애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보다 더 크게 영적으로 성장하면 문제와 장애물을 가볍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동화작가 트리나 폴러스 1972년에 쓴 <꽃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Flowers)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와 노란색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이야기로 엮었습니다. 다른 애벌레들을 딛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무한경쟁의 애벌레들의 세계를 벗어나는 길은 번데기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옛 자기를 버리고 나비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애벌레의 세계는 마치 염려와 근심과 걱정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이 땅의 현실을 상징해주고 있습니다.
염려로 점철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눈을 들어 모든 인간의 지각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평강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염려보다 더 크게 영으로 성장할 때 우리는 염려로부터 벗어난 존재로 날아 오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