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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미혹을 물리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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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도톨 2020. 5. 29. 05:56

본문

[새벽설교 본문]

베드로후서 2장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But there were also false prophets among the people, just as there will be false teachers among you. They will secretly introduce destructive heresies, even denying the sovereign Lord who bought them -- bringing swift destruction on themselves.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Many will follow their shameful ways and will bring the way of truth into disrepute.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In their greed these teachers will exploit you with stories they have made up. Their condemnation has long been hanging over them, and their destruction has not been sleeping.

전문 벧후 2:1~10

[금요 새벽설교 정성엽 전도사]

<미혹을 물리치라>

베드로후서는 베드로 사도의 일종의 유언장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로마의 감옥에서 쓴 서신일 가능성이 높은, 순교를 목전에 둔 예수님의 1대 제자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제자들에게 남기는 유지가 담겨있는 귀한 서신입니다.
그런데 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베드로후서의 대부분이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계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마지막 유지의 대부분이 거짓 교사의 위협을 경계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했을 정도로, 초대교회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짓 선생들은 교회공동체가 맞서야 할 큰 위협이었으며, 이들에 대한 경계와 분별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사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도 거짓 선지자들이 늘 있어왔었고 이와 마찬가지로 베드로 당시 초대교회 시대에도 거짓 선생들은 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살아계신 것처럼 이에 반하는 세력 또한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의 위협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이며 우리는 거짓 선생이 지금도 현존하는 위협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두고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는 거짓 선생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거짓 선생의 첫 번째 특징은 멸망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이단이란 단어는 헬라어 하이레세이스(haireseis)로 이 뜻은 선택한 믿음, 좀 더 풀어 설명하면 고의적으로 선택한 옳지 못한 믿음을 뜻합니다.
이 단어의 의미 가운데는 자기중심적인 선택, 자기 주도적인 판단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이단이라는 단어 안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부정되고 인간이 주인이 되어 선택하고 판단하는 방향성 모두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단을 수식하는 단어는 ‘멸망하게 할’입니다. 여기서 멸망이란 단어는 파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입니다. 이단은 기독교의 본래 가치를 파괴하고, 인성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그리고 거짓 선생은 이 멸망하게 할 이단을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여오는데, 어떻게 들여오냐면, 가만히 들여옵니다. 가만히라는 동사는 은밀하게 또는 천천히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오기 때문에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하기가 쉽지가 않게 됩니다. 우리를 파괴할 수 있는 무섭고도 끔찍한 이단은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없도록 가만히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받아 영으로 든든하게 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교묘하게 침투하여 아주 천천히 만성독에 중독되게 하듯 거짓에 중독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교회 내에 침투해 있던 신천지가 색출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저도 명단이 확인된 신천지 몇을 직접 만나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면하고보니 명단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면 사실상 구별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이들은 우리보다 오히려 더 우리같이 위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최소 10년 이상을 교회 내에서 잠복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흠잡을 데를 찾기 어려운 신실한 성도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작정하고 가만히 위장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은 드러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량한 성도들에게 나쁜 영향력을 은밀하게 흘려보내면서 암암리에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성도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말씀을 말씀답게 받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목사님이 매주 전해주시는 말씀, 이 시대 어디서 이런 말씀을 만날 수 있을까, 복도 이런 복이 어딨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되는 그런 말씀이지만, 아무리 탁월한 말씀이라도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말씀이 들어오는 마음의 문이 닫히게 됩니다.

이 시대의 거짓 선생들은 베드로 사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 곁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말씀이 우리 마음 가운데로 들어올 수 없도록 우리의 마음 가운데 불신과 의혹을 가만히 던져놓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점점 말씀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 될수록, 우리는 결국 사탄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짓 선생은 가만히 움직이기 때문에 분별하기가 참으로 어렵지만, 반대로 이들의 1차적 목표를 기준으로 역으로 살피면 우리는 이들을 분별해 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내 마음에 말씀이 들어오는데 유익이 되느냐 방해가 되느냐를 기준으로 삼아보는 것입니다.
참 괜찮아 보이는 사람인데 어째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왠지 예배가 싱숭생숭해지고 말씀에 대한 집중이 떨어지고, 예배 가운데 눈물이 사라진다, 말씀 나눔보다는 사람이나 이슈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데 더 관심이 쏠리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면 그 사람은 경계하고 멀리해야할 거짓 선생인 것입니다.

또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보다 그 사람의 말이 더 내 마음에 울림이 있고 영향력을 강하게 미친다면 그 사람은 거짓 선생일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우리가 인지하기 어려울만큼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나를 진리로부터 떨어뜨려서 마침내 내 스스로가 파괴되도록 만드는 거짓 선생들을 우리는 첫째도 둘째도 말씀만을 붙들고, 말씀만을 중심으로 하여 분별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설령 잠깐 흔들릴 지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거짓 선생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거짓 선생의 두 번째 특징은 사신 주를 부인하고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신은 속전을 주고 권리를 사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피값으로 우리의 생명의 권리를 다시 사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을 the sovereign Lord라고 표현했는데 이 의미는 통치하는 주권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좀 쉽게 번역하면 생명의 권리를 사신 통치자 예수를 부인하여 스스로 신속하게 멸망을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우리의 죄성을 자극하여 예수님의 단면만을 우리가 취하도록 만듭니다.

예수님과의 수직적인 주종관계는 우리의 근본입니다. .내 생명을 구해주신 예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예수님과의 건강한 관계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예수님의 절대주권을 부정하도록 하는 달콤한 말을 속삭입니다.
예수님을 만만한 친구, 뭐 그 정도면 양반이고 기도라는 램프를 문지르면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주고 다시 사라져주는 편리한 인생도움이 정도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엄위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내 생사여탈권을 가지신 경외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 의식은 제거하고 그저 내게 도움을 주고 위로나 주는 그런 존재로 예수님을 왜곡시켜 예수님을 예수님답게 대하는 균형을 깨어버립니다.
얕은 눈물정도로 우리의 감정을 달래면서 우주의 통치자이신 광대한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우리가 찾지 않도록 만듭니다.
사실 이 시대 전체가 예수님 앞에 붙어야 하는 sovereign, 통치자라는 의식을 지워버리고 있는 거짓 선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우리를 위로하시려고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신 분입니다.
생명에는 생명으로 댓가를 치루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는 이 생명의 문제, 이생뿐 아니라 영생이 걸려있는 생명의 댓가가 오간 엄중한 관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진지한 관계를 얄팍한 인간적인 감수성 수준으로 떨어뜨리려는 모든 시도는 거짓 선생의 특징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짓 선생의 꾀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우리 생명의 주관자요 우리 인생의 통치자로서의 예수님 의식을 망각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멸망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으신 예수님과 함께 생명의 주인되신 통치자 예수님을 언제나 한쌍으로 기억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 특징은 호색과 탐심인데요, 여기서 호색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성적인 타락에 국한시키기보다는 비도덕적, 또는 관능적 혹은 육체적인 추구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거짓 선생의 이 육적인 특징은 이들이 영의 것이 아니라 육의 것을 추구하는 본성을 따르기 때문에 결국은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의 것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부자로 살았습니다.

욥도, 아브라함도 엄청난 거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오늘날로 말하면 노숙자였습니다. 그리고 욥 역시 그 많던 재산과 자녀들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한순간에 거두어 가셨을 때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4개국 왕들과의 전투에서 엄청난 승전을 거둔 후에 전리품을 취하지 않았는데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이 분들의 중심은 온전히 하나님이었습니다. 부는 하나님과의 동행 가운데 따라온 것 뿐이지 이 분들은 부나 육적인 영역의 것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궁극적으로 육적인 영역의 것들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이들이 아무리 영적인 어휘들을 사용하고 심지어는 성령의 능력과 유사해 보이는 능력을 보일지라도 이들의 궁극적인 추구는 육의 영역에 속해있습니다. 그들의 외향에 속지 말고 그들의 의도를 살피면 우리는 거짓 선생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돈, 사람들의 신망, 직업과 사업, 건강과 자녀의 학업이나 진로문제 해결 등과 같은 이생의 문제해결이 영적 추구에 앞서 있는 사람은 다 거짓 선생 또는 잠정적인 거짓 선생 후보자인 것입니다.

결국 거짓 선생을 구분해 내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가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내 추구에 육적인 욕망이 배여 있다면 우리는 육의 욕심을 자극하는 거짓 선생의 유혹을 구별할 수도 없고 떨쳐낼 수도 없습니다.
영으로 거듭나 육의 사람과 완전하게 구별되어야만이 우리는 육의 속성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거룩이 완전해 질 때 거짓 선생의 계략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거짓 선생들의 위협을 우리공동체 안에서 제거할 수 있게 됩니다.

저나 우리 모두 아직 가야할 길이 너무 멀지만 이곳에 모인 우리부터 같은 말씀을 받아가며 함께 영으로 탁월해 지는 그 경지를 추구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두레교회 공동체와 이 시대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을 위협하고 있는 거짓 선생들을 분별하여 쫓아내는 능력 있는 영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나중에 천국 가서 베드로 사도님을 만났을 때, 선배님, 선배님의 유언 잘 받아서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당하지 않고 믿음을 잘 지키고 무사히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회포를 풀어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우리로 영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소망을 품고 살도록 인도해 주시는 우리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으로 하루를 잘 살아보려고 합니다.
이 시대 전체가 거짓 선생으로 우리를 미혹하지만 말씀 붙들고 말씀을 중심으로 시대의 유혹을 분별해내고 믿음을 지켜내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약하고 미욱하지만 주님을 주권자로 모시고 오늘 하루 내 인생의 주인님으로 예수님을 모십니다. 우리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그리고 영으로 조금 더 성장하는 오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매순간 내 마음에 모셔두고 먹고 마시고 무엇을 하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행할 수 있는 복된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미혹하는 내 주변의 영향력들은 무엇인지 이시간 하나님 앞에서 기억해 보시면서 내 생각과 내 관계 가운데서 몰아내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공동체 내에서 말씀이 흥황하지 못하도록 미혹하는 세력을 주님께서 제거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정결해진 우리공동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아버지 한 번 크게 부르짖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