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본문]
사도행전 3장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Now, brothers, I know that you acted in ignorance, as did your leaders.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But this is how God fulfilled what he had foretold through all the prophets, saying that his Christ would suffer.
[금요 새벽설교 이종진 전도사]
<우리의 정체성>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정체성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여러 모양의 정체성을 가집니다
저는 두레교회 소년부 전도사, 두레학교 교사, 가정의 남편, 아이의 아빠, 아내윽 배우자입니다
정체성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정체성은 이 땅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 천국 시민권자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체성은 맡겨진 일을 통해 알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이 땅 가운데 살아가지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천국시민권을 가진 자입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 앉은뱅이를 세운 일로 많은 사람이 놀라서 베드로를 둘러 쌉니다 그곳에서 베드로가 말합니다
"형제들아..."
그들은 형제라고 불리기 어려운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형제들아" 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을 향해 살인자들, 원수들 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너희 관리들도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관리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민족에대한 긍휼의 마음을 가진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복음과 진리를 선포하는 일에 증거로 삼으셨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예수님을 죽인 일에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자기 민족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잘못을 하면 화가 나지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그렇게 부릅니다 형제들 보다 원수들, 죄인들, 살인자들아,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을 다스리는 관리에 대해서는 너희의 관리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민족에 대해 긍휼의 마음을 가졌지만 너희 관리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다스리는 로마 황제, 유대 총독, 종교지도자들을 일컫습니다
그들을 너희들의 관리로 삼아 예수 죽이는 일에 동참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관리라고 말하지 않고 너희의 관리라고 말한 것은 베드로는 너희와 다른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너희를 다스리는 관리인 황제, 총독, 종교지도자가 너희들의 관리라면 나의 관리자는 하나님 한 분이라고 담대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보이지않는 정체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기 민족 유대인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가졌지만 죄에 대해서는 책망합니다
너희는 누구의 백성이냐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다고 위로합니다
너희가 몰라서 한 것이라
그런데 나는 아노라 나는 아는데 너희는 모른다
베드로가 아는 것과 유대인 관리들ㅇㄷㄴ 몰랐다고 선포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가 고난 받으실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실 것을 말씀하셨고 고난받으실 분으로 이 땅의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다고 수없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말하길
이 땅에 메시야가 오셔서 회복시키실텐데 권세자의 모습이 아니라 종의 모습으로, 죽임당하시는 모습으로 오신다고 끊임없이 말씀하셨다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을 유대인들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외친 말이 있습니다
"회복시키실 때가 이 때입니까"
제자들도 로마의 억압에서 독립하고 자유로워지며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되어 강력한 국가를 만드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회복이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대다수 유대인들은 출신 지역, 용모, 외모를 보았고 그가 어울린 대상을 이상하게 보았습니다 그분은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과 어울렸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의 모습도 백마탄 왕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낮아져 가장 천대받는 지역에 오셨고 천대받는 자들과 어울리며 나무에 달린 저주받은 자로 죽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기다린 메시야의 모습을 그들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지각, 경험, 관습, 태도등이 그것을 가렸습니다
분명히 성경에는 그렇게 낮은 모습으로 오신다고 말했는데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그분이 우리의 메시야, 통치자, 관리자로 인정하고 있습니까
우리 삶에서 이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메시야라고 말한다고 해도 유대인처럼 진짜 우리 삶에서 우리의 주인으로 삼아 낮은 길, 좁은 길, 저주받은 고통스런 현장에서 종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 제자로 살아가고 있나요?
예수님을 알아가는 지식은 일단 행하면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경험한 한도 내에서, 지식의 범위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일단 행동을 통해 순종하다보면 알게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각을 깨뜨리라는 것입니다 눈에는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일에 제약이 있을지라도 말씀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머리로알고 메시야를 고백해도 하나님이 우리의 관리자, 지도자, 왕, 주인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을 통해 더욱 그분을 알게하십니다
머리로 아는게 아니라 행동을 통해 알게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유대인조차 수많은 선지자의 외침과 선포가운데에서도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들 곁에서 함께 삶을 공유한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안타까움뿐 아니라 나의 모든 삶을 동행하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나의 안타까움입니다
믿는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움을 아는 것이 복입니다 안타까움을 갖지 못한다면 고통을 당할 때 감사하지 못합니다 고통이 오면 평상시 주님을 잊고 있던 것을 회개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범사가 주께 속해있고, 통치자가 주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통 중에서도 내 옆에 계신 주님을 보는 시야가 열리는 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끊임없이 메시야를 우리에게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주의 사자를 통해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베드로가 나는 아는데 너희들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고통당하게 하신 그분이 메시야임을 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선지자의 외침을 들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몰랐습니다
의사소통은 영어를 능통하게 하여 외국인과 대화하든지 그사람이 한국어를 쓰든지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수많은 대화가 사탄의 불화살인지 말씀인지 분별하려면 영어 언어를 써야 합니다 말씀, 기도, 묵상하는 가운데 영의 언어를 사용하길 바랍니다
대화의 주어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의식하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분을 통해 나에게 들려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 말씀 선포는 목사님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신다고 깨달아야 합니다 대화를 하든, 묵상을 하든, 사탄의 불화살과 생각 쳐내고 말씀을 그대로 취하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일상의 삶에서 영의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소쿠리에 물을 부으면 물이 새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베드로가 보았던 것을 보고 깨닫는 하는 하루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