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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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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도톨 2020. 7. 30.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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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본문]

사도행전 6장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So the word of God spread. The number of disciples in Jerusalem increased rapidly, and a large number of priests became obedient to the faith.

[목요 새벽설교 이종진 전도사]

<말씀의 부흥>

성령을 체험함 하나님의 공동체와 사도들의 삶은 세상의 위협과 협박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선포합니다
세상의 어려움과 고통에서도 견고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 놓습니다 자신의 은사를 나누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눕니다

그런데 공동체에 작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외부의 어려움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입니다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의 갈등은 수가 많아지고 사역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생겨납니다
그들 가운데 소외된 자들이 발생하면서 갈등이 야기됩니다
공동체 문제가 발생하면 초대교회 사도들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봅니다

헬라파 유대인, 히브리파 유대인의 갈등이 있을 때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고 있습니다
구제사역과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사역을 위해 일곱 집사를 선출합니다
세상에서 문제가 생기면 권위있는 자가 문제 발생의 원인을 살피고 해결 방법을 찾고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도들은 오직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합니다

생각 1
사도들은 다르구나 문제가 생겼는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에 힘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생각 2
사도들의 권위 앞에서
문제를 외면한 것은 아닌가
하나님 말씀 선포와 성령의 역사만으로 문제를 외면한 것은 아닌가

성도들과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일까요?
왜 문제를 제쳐 두고 이것에 집중한다고 했을까요?

보통 기도하는 일에 힘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내가 해결할 수 없을 때 매달립니다
내 앞에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문제를 들고 나아가다 보니 오랜 만에 주님 앞에 나갈 때가 많습니다
민망한 마음으로 문제를 들고 나아갑니다
주님 보기 부끄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기도할 때 미사려구를 사용하기 보다 아빠, 아버지로 부르면서 친밀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랜 만에 나아가면 친밀함 대신 쑥쓰러움이 있습니다 나름 격식을 차리고 가는 모습이 민망합니다

수련회에서 기도할 때 누가 늦게 기도하는가 보자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들면서도 오래 기도하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은 적이 있습니다
수련회 끝나고 내려와서 일상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어려울 때 기도하는 것은 특정한 때에만 기도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한번 기도할 때 오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하나님께 질문하라고 했습니다 끝말에 '요'자를 붙여라
진짜 짜증날 때
주님 짜증나요..
왜 그럴까요..
쟤는 왜 저래..그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요'자를 붙이면 호흡하는 것과 같이 끝임없이 질문하게 되고 항상 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는 모습이 됩니다
특정한 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매사 호흡처럼 대화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이 주인으로서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주님의 뜻을 구하면서 내 옆에 주님이 계심을 깨닫는 것이 기도입니다
사도들이 기도한다는 것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보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분이 기뻐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행했던 초대교회 사역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는 행할 수 없습니다

말씀 사역에 힘쓴다는 것은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것 이전에 온전히 삶에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아는 것은 성경적 지식이 아니라 단 한구절이라도 삶에서 적용했고 살아내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일상의 삶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의 삶이 되는 것이 말씀 사역입니다

제가 담임 목사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두레교회 전도사,두레학교 교사로 사역하면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많습니다
한달에 한번 학교에서 말씀을 전하고 일주일에 한번 새벽에 말씀을 전합니다
예전에는 말씀을 알아가고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것이 기쁘고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런데 전도사 사역을 시작하면서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쁨이 사라집니다
저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글픔과 함께 제대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맞나 의구심이 생깁니다
예전에 비해 말씀을 보는 기쁨이 없고 주님을 알고자 묵상했는데 기계적으로 잘못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답변을 주십니다
'말씀 사역을 하는 것은 성도님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닫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해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연구한 것이 잘못된 것이고 내가 변화되기 위해서인 것을 새로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을 행하는 기준이 하나님 말씀이기에 마지막 날에 우리를 판단하십니다
말씀 기준에 따라, 하나님의 질서, 규칙, 법칙에 따라 살았느냐 아니냐가 선악의 기준이 됩니다
나의 삶의 규칙, 규범으로 살았느냐 하나님의 법칙으로 살았느냐
그것이 기준입니다

사도들이 말씀 사역에 힘쓴 것은 세상의 공격 속에서 옳고 그른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존귀를 드렸습니다 말씀의 기준대로 사는 모습을 보고 수많은 제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믿음을 지킨 것은 말씀과 삶이 하나가 되었기에 승리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사역에 힘쓰니 말씀이 흥왕하여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제사장들 도 이 도에 복종했습니다
유대교 제자장들도 복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유대교 수호신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이름을 멸망시키려는 존재였는데 그들도 복종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모두 무너집니다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는 것은 내가 주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말씀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입니다
개인의 죄악이 말씀에 무너지고 공동체의 갈등이 말씀 앞에서 무너집니다

말씀으로 나의 삶이 온전히 변화되고 그 모습을 통해 이 자리 성도의 삶이 변화되며 공동체가 변화된다면 이 땅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변화됩니다

한국교회의 무너진 권위가 회복되길 바랍니다
기독교가 빛과 맛을 잃어갈 때 우리 한 사람의 삶이 빛이 되고 소금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